미국 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은 위트에 능했고 또 무척 즐겼다. 1981년 3월 피격 직후 병원 응급실 간호사들이 그의 몸에 손을 대자 “낸시(그의 부인)에게 허락은 받았냐”고 물었다는 이야기, 얼마 뒤 낸시가 오자 “여보 미안하오. 영화에서처럼 총알이 날아오면 몸을 숙여야 한다는 걸 깜빡 잊었어”라고 했다는 이야기. 할리우드 스타 출신 정치인이던 그는 법조계나 워싱턴 정가에서 근육을 키운 정치인들에게선 찾아보기 힘든 매력을 제스처와 표정과 말을 통해 발산하곤 했다. 수술실 집도의들에게 “제발 당신들 모두 공화당 지지자들이라고 말해 달라”고 너스레를 떨었는데, 마침 민주당 지지자였던 집도의(Dr. Joseph Giodano)가 “오늘은 우리 모두가 공화당원입니다”라고 답했다는 일화도 있다.
농담 때문에 겪은 곤란도 적지 않았다. 84년 8월 11일 레이건이 휴가지 캘리포니아 샌터바버라 인근 델시엘로(del Cielo) 목장에서 미국 공영라디오(NPR) 주말 주례연설 리허설 도중 던진 농담이 그 예였다. 그는 마이크 테스트 도중 자못 진지한 어조로 “국민 여러분, 저는 오늘 러시아를 마침내 끝장내게 될 법안에 서명한 사실을 알려드리게 돼 무척 기쁩니다. 우리는 5분 뒤 폭격을 시작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날 그가 할 연설 요지는 청소년 방과후 교내 종교활동 자유화 법안에 서명했다는 거였고, 저 농담은 일종의 패러디였다. 어쩌면 그의 무의식이 저렇게 말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매카시 시대부터 할리우드의 어둠 속에서 ‘빨갱이’를 쫓던 맹렬한 반공주의자였다.
물론 저 농담은 방송되지 않았지만 방송장비에 녹음이 됐고, 소문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CBS, CNN 등이 녹음파일을 확보했지만, 명백한 농담을 진지하게 보도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한 신문(Gannett News Service)이 저 사실을 보도했고, 언론이 러시아 외교부 논평을 요구하기도 했다. 물론 러시아측은 “노코멘트”였다. 그 해 말 대선이 있었고, 레이건은 재선에 출마한 상태였다. 민주당 후보 월터 먼데일은 “대통령의 말은 무척 조심스러워야 한다.(…) 물론 농담이란 건 알지만, 재미있다고 생각하지는 못하겠다”고 말했다. 어쨌건 레이건은 선거인단 투표 525대 13으로 압승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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