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무대 데뷔전 치른 ARF서
“대국답게 행동하라” 일침 호평
유창한 영어실력 과시 존재감
일본 아베신조(安倍晋三) 내각의 새 외교수장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무장관이 지난 6~8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을 통해 외교무대 데뷔전을 순조롭게 치렀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특기인 유창한 영어실력을 과시하는가 하면, 공세적으로 나온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에겐 “즉흥적인 대사로 반박하는 등 존재감을 과시했다”는 반응이 나온다.
고노 장관은 미국 하원의원실 인턴 경험이 있는 등 일본 정치권에선 가장 영어에 능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이번 일정에선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과 영어로 회담했다. 15분간의 미일회담에선 외무성 간부들의 조언을 뿌리치고 통역 없이 임해 실질적인 대화 시간을 두 배로 늘릴 수 있었다. 그는 리용호 북한 외무상에게도 다가가 영어로 납북자 문제에 관한 일본 측 주장을 전달했다.
일본에선 무엇보다 중국 왕이 부장이 동ㆍ남중국해 문제를 비판한 그에게 “실망했다”고 한 데 대해 “중국은 대국으로서 행동방식을 익혀야 한다”고 재빨리 맞받아쳐 상대를 쓴웃음짓게 했다며 반기는 분위기다. 다만 8일 중국 환구시보가 고노 장관이 왕이 부장에게 고개 숙여 악수하는 사진을 1면에 게재한 것을 놓고 “중국이 일본보다 격이 높다는 인상을 주려는 전략에 대한 대응으로 경솔했다”는 반응이 총리 주변에서 나왔다고 요미우리(讀賣)신문이 전했다.
호평이 대세지만, 그가 부친인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전 외무장관의 그늘에서 벗어나 ‘홀로서기’에 성공할지 알 수 없다는 반응도 나온다. 림족셍 브루나이 외교장관은 “일본 외무장관은 아베 신타로(아베 총리 선친)와 고노 요헤이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고,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훌륭한 정치가 집안이다. 부친이 러일관계에 공헌한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덕담을 건넸다. 역설적으로 부친의 존재가 그의 외교 활동폭을 제한할 수도 있는 셈이다.
더욱이 위안부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1993년)’의 영향으로 한국 측 기대가 높아졌다며 부담이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자민당 총재선거 출마경험이 있는 그가 독자색깔을 내는 데 성공하면 내년에 재도전할 것이란 관측과 함께, 심각해진 북한 핵ㆍ미사일 위협과 중일 충돌, 한일 위안부 재협상 여부 등 ‘고노 외교’에는 가시밭길이 놓여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도쿄=박석원 특파원 s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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