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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카페에 거는 작은 기대

입력
2017.08.10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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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사진을 봤을 때 마음이 들떴다. 독특한 디자인의 카페와 풍광 좋은 자연, 역사적 이야기가 있는 본채 등등에 마음이 혹하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이름이 ‘굿모닝 하우스’라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일요일 오후에 급작스럽게 수원까지 간 것도 이런 기대감 때문이었다. 멋진 곳에서 느긋한 휴일 오후를 보내고 싶었고, 근대건축의 새로운 쓰임에 늘 관심이 있었기에 얼른 가서 보고 싶었다.

기대가 깨지는 데는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옛 공관의 간결한 디자인, 마당 너머로 신축한 카페의 비정형 디자인은 보는 즐거움을 충분히 주었다. 건축가가 많은 고민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카페 내부에서 내 시선에 잡힌 것들은 기분 좋은 발걸음을 막아 서고야 말았다. 어수선하게 배치된 의자와 한쪽에 밀쳐져 있는 각종 행사기구들, 급조된 듯한 무대 장치 등이 독특한 건축언어를 가진 건물과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다. 혼자 일하는 알바생이 청소하랴 테이블 치우랴 바빴다. 나는 정돈되지 않은 무미한 카페에서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시간을 보내기보다 뒤쪽 산책로를 거닐며 화성 성곽까지 올라가는 쪽을 택했다.

미술관이나 박물관, 공원, 기념관, 도서관 등에 가는 즐거움 중 하나는 열심히 관람한 후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멍하니 앉아 방금 본 것들을 되새겨보는 시간 때문이다. 전시도 좋고 카페까지 완벽하다면 최고의 공간으로 기억 속에 자리잡는다. 카페를 운영하는 일은 절대 쉽지 않음을 나도 잘 알고 있다. 게다가 공공시설인데 기대는 무슨.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 좋은 공간에 괜찮은 카페를 기대하지 말자니, 섭섭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몇 해 전 옛날 공주읍 사무소로 쓰던 근대건축물이 전시문화공간으로 바뀌었는데 그 안에 멋진 카페가 있다고 해서 방문한 적이 있다. 하지만 카페에는 긴 테이블과 예쁘게 디자인된 머그잔만 놓여있을 뿐 영업하지 않았다. 반갑게 맞아주시던 관리자 어르신에게 자판기 커피를 얻어 마시며 이야기를 들어보니, 서울의 유명한 카페에 위탁 운영을 맡겼는데 몇 달 동안 하루에 한두 명 손님이 들다 보니 운영이 힘들어서 그만 두었다는 것이다. 주변에 문화센터랑 주택들이 많았지만 서울에서 온 비싼 커피를 마실 사람은 별로 없었던 것이다. 주민들과 동떨어진 성격의 카페다 보니 실패는 당연한 것이었다. 좋은 공간이 있어도 사람들이 머물고 싶은 카페를 만드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부산의 옛 정란각(문화공간 수정)은 기억에 많이 남는다. 일제강점기 지어진 대저택인 이곳은 한때 요정으로 쓰였고 문화재청에서 매입하여 일반에 공개했다. 건물을 둘러 볼 수도 있고 차나 커피를 한잔 할 수 있도록 카페로 운영된다. 이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모두 은퇴하신 동네 어르신들이었다. 연세 지긋하신 분들이 손님을 맞이하고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커피를 내리는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했다. 자신의 경험을 살려 건물 이야기도 실감나게 들려주었다. 주민들과 이 건물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국적인 건물과 은퇴한 어르신들이 만드는 보기 드문 풍경. 기억에 남는 독특한 공간과 카페였다.

어느 시대나 카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공공도서관이나 서점의 가장 중요한 위치에 스타벅스가 들어가고, 일하는 공간이자 휴식의 공간, 만남의 공간이 되어간다. 카페는 더 이상 차만 마시는 공간이 아니라, 공간의 기억을 축적하고 확장하는 기능도 한다. 그러므로 공공시설과 같은 크고 중요한 시설에서 카페가 더 이상 초라하게 취급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관람 후 얼른 그곳을 떠나 스타벅스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더 오래 머물면서 공간에서 경험한 것들을 되새기고 더 오랜 기억으로 남겨두면 좋겠다. 관람과 휴식, 여유는 함께 할 때 더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정구원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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