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41ㆍNC)의 ‘인천 고별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원정팀 SK의 깜짝 선물로 당사자와 팬들을 감동시켰다.
지난 9일 인천 SK-NC전을 앞두고 양 팀 선수들은 더그아웃 앞에 도열했다. SK 구단에서 발표한 '정의윤 1,000경기 출전 기념행사'를 위한 것처럼 보였다. 그 순간 초대형 전광판 '빅보드'에서 정의윤이 아닌 이호준의 SK 시절 영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승엽(삼성)과 함께 올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는 이호준을 위해 양 구단이 미리 마련한 '깜짝 기념식'의 시작을 알리는 영상이었다. 이호준은 2000년대 후반 ‘왕조‘를 구축했던 SK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선수이자 2000년 SK 창단 때부터 함께했던 이호준에게 인천은 제2의 고향과 같은 곳이다. 이번 시즌 NC가 마지막으로 인천을 찾는 날, SK는 전례 없는 원정팀 선수의 기념식을 열어 극진한 ‘전관 예우’를 한 것이다. 11일부터 이승엽의 마지막 원정 투어가 예정돼 있지만 그에 앞서 이호준이 KBO리그 1호 은퇴 투어의 주인공이 된 셈이다.
상대 선수, 상대 팀에 대한 경의의 표시는 메이저리그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시애틀 구단은 지난 4월18일 스즈키 이치로의 세이프코필드 방문 기념 행사를 개최했다. 시애틀은 전광판을 통해 이치로가 몸담았던 최전성기 시절 경기 영상을 틀었고, 지난해 달성한 통산 3,000안타도 축하해줬다. 레드카펫을 통해 등장한 이치로는 시애틀의 옛 동료들과 포옹하며 기념촬영을 했다. 팬들은 '집으로 돌아온 이치로를 환영한다'는 플래카드를 흔들었다. 2007년 8월7일 배리 본즈(당시 샌프란시스코)가 756호 홈런 신기록을 달성한 순간 희생양이 된 투수 마이크 배식(당시 워싱턴)은 잠시 침통한 표정이었지만 본즈가 베이스를 돌 때 모자를 벗어 대타자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라운드 밖에선 어느 리그보다 절친한 선ㆍ후배들이지만 승부에 매몰돼 있는 경기장에선상대는 상대일 뿐으로 인식하는 KBO리그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었다. 하지만 성숙된 문화는 최근 자연스럽게 자리잡고 있다. 이진영(kt)이 지난 6월16일 수원 한화전에서 통산 2,000안타를 쳤을 때 한화 2루수 정근우가 수비 후 이진영에게 하이파이브를 건넨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이승엽의 은퇴 투어 역시 시대를 풍미한 마무리투수 마리아노 리베라 등 메이저리그 전설들의 마지막 원정 투어에서 착안해 각 구단이 실행에 옮기게 됐다. 승부의 세계에서 잠시 벗어나 36년 KBO리그의 격을 높이는 일이다.
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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