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좌로 받은 1,500만원 뇌물 아닌 차용 판단
향응 금액 1,200만원 부분도 998만원만 인정
재판부 “직분 망각하고 검사들 명예 실추시켜”

고교 동창과 스폰서 관계를 유지하며 수천만 원대 향응ㆍ금품을 받은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은 김형준(47) 전 부장검사가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고 풀려났다.
서울고법 형사3부(부장 조영철)는 10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 전 부장검사에게 징역 2년6월의 실형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벌금 1,500만원을 선고했다. 벌금 5,000만원과 추징금 2,700만원을 선고한 1심과 달리 벌금과 추징금도 각각 1,500만원과 998만원으로 크게 줄었다.
김 전 부장검사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함께 재판은 받은 고교 동창 김모(47)씨에게는 벌금 1,000만원이 선고됐다. 앞서 1심은 김씨에게 징역 8월을 선고했다.
김 전 부장검사는 2012년 5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김씨로부터 29회에 걸쳐 2,400만원 상당의 향응을 제공받은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김씨에게서 “지인이 가석방되도록 도와달라”는 부탁 등을 받고 3,400만원 상당의 현금을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김 전 부장검사는 자신의 비위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김씨에게 관련 정보가 들어있는 휴대폰을 없애고 압수수색에 대비하라고 알려준 혐의도 받았다.
1심 재판부는 김 전 부장검사의 전체 뇌물액수를 5,800만원으로 보고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을 적용한 검찰의 판단과 달리, 2,700만원 부분만 유죄로 인정해 형법상 뇌물죄가 적용됐다. 항소심에선 1심에서 뇌물로 인정된 액수마저 크게 줄였다. 재판부는 김 전 부장검사가 계좌로 송금 받은 1,500만을 두고 “여러 정황을 볼 때 뇌물이 아닌 빌린 돈으로 보인다”고 판단해 무죄로 봤다. 김 전 부장검사와 김씨가 나눈 문자메시지 중 ‘나중에 이자 포함해 꼭 갚겠다’(김 전 부장검사) ‘이자는 필요 없다 친구야’(김씨) 등 차용을 언급한 부분이 판단의 근거가 됐다. 또 향응 액수도 1심이 1,200만원으로 본 것과 달리 998만원만 인정됐다.
재판부는 “김 전 부장검사가 본분을 망각하고 고가의 향응을 여러 차례 받음으로써 묵묵히 직분을 다하는 다른 검사들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검찰을 향한 국민의 신뢰도 훼손시켜 비난 가능성을 가볍게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김씨와 30년 이상 사귀어온 사이라는 점이 김 전 부장검사의 분별을 흐리게 하고 경계심을 늦추게 한 측면도 없지 않다고 보인다”고 양형 배경을 설명했다.
김 전 부장검사는 판결 직후 “법원이 진실만을 토대로 판단해준 것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며 “기회가 주어진다면 자연인으로서 가장 낮은 곳에서 사회에 봉사하면서 살아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 전 부장검사는 박희태 전 국회의장의 사위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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