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한 사람만 죽을 만큼 사랑해 본 적이 있나 싶어요.”
배우 박민영은 요새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지난 3일 종방한 KBS2 드라마 ‘7일의 왕비’에서 연산군 이융(이동건)의 이복 동생 이역(연우진)과 절절한 사랑에 빠지고, 그 때문에 부모를 잃는 풍파를 겪으면서 매일 혼절할 정도로 눈물을 쏟아야 했다. 하루 촬영의 처음부터 끝을 우는 장면으로 채운 날도 있었다. 9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민영은 비운의 왕비 단경왕후 신채경으로 보낸 시간을 이렇게 돌아봤다.
“눈물이 안 나오는데 억지로 우는 건 진짜 제 연기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우는 장면 찍을 때마다 눈물이 뚝뚝 떨어지더라고요. ‘이제 내가 극 중 채경이와 같은 사람이 됐구나’라고 생각하니 잦은 눈물 연기가 부담스럽지 않았어요. 주변 스태프들은 ‘이러다가 얼굴 뚫어지겠다’, ‘안과 가보라’고 하더라고요. 하하.”
‘7일의 왕비’는 조선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인 7일 동안 왕비의 자리에 앉았다 폐비된 단경왕후의 삶과 사랑을 그렸다. 주인공들은 실존 인물들에서 착안했지만, 이야기 대부분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구현했다. 이융의 동생 이역과 사랑에 빠진 신채경은 두 형제의 정치 싸움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야 했다. “JTBC ‘효리네 민박’의 이효리-이상순 부부처럼, 친구 같고 소소한 사랑을 추구”하는 박민영의 연애스타일과는 사실 다르다. 신채경과 이역은 왕이 된 이역이 39년 후 죽음을 앞두고 나서야 재회한다. 박민영은 “실제로는 내가 그런 사랑을 할 수 없으니, 작품을 통해 경험해보는 것도 참 아름다운 일인 것 같다”고 말했다.
더운 여름날 사극 촬영은 겨울보다 힘들었다. 한복은 통풍이 잘 안 돼 안에 덧대 입는 속옷을 하루에 네 벌씩 갈아입었다. 30도가 훌쩍 넘었던 어떤 날은 궁궐 앞마당에서 하루 종일 엎드려 있었던 적도 있다. 박민영은 “이글이글 타오르는 돌바닥에 하루 종일 엎드려 있다가 일어났더니 나도 모르게 비틀거리더라”고 말했다. 그는 “온몸에 땀띠가 날 정도로 땀을 흘렸는데, 눈물 연기까지 자주 하니 탈수 현상이 일어났다. 그런데 튼튼해서 잘 안 쓰러지더라”며 웃었다.
“사극은 앞으로 절대 안 하겠다”는 다짐을 박민영은 이번에도 깨고 말았다. 2006년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왈가닥 여고생 강유미로 데뷔한 그는 SBS ‘자명고’, KBS2 ‘성균관 스캔들’, MBC ‘닥터진’ 등 사극에서 돋보이는 활약을 보였다. 처음엔 사극을 하면 발음, 목소리가 좋아질 것이라는 연기 선생님의 조언을 듣고 시작했지만, 지금은 사극의 매력에 푹 빠졌다.
“처음엔 연기력 향상을 위해 시작했는데, 경력이 쌓이다 보니 장르 자체가 좋아졌어요. 현대극에서 쓰이는 연기 요소들을 사극에서는 쓸 수가 없더라고요. 제스처나 표정, 대사에 절제미를 담아야 하죠. 현대극과 다른 목소리 톤과 얼굴 근육을 쓰면서 입에 잘 붙지 않는 대사로 감정을 표현해야 해요. 어렵지만, 그만큼 성취감이 있는 작업이에요.”
박민영은 2015년 중국 광저우TV 60부작 드라마 ‘금의야행’에 이어 지난해 중국 동방위성TV, 절강위성TV에서 방영 예정이었던 ’시광지성’(시간의 도시)으로 중국 진출을 모색했다. 그러나 한한령으로 인해 아직 방영이 되지 않아 아쉬움이 크다. 그래도 데뷔 11년째에 접어든 배우의 마음가짐은 성숙하다. “불과 방영 2주 전에 편성이 바뀌면서 아쉬움이 컸지만, ‘언젠간 방영되겠지’하는 생각으로 마음 편하게 기다리고 있어요. 30대가 되니 성공보다는 행복을 추구하게 됐어요. 연기하면서 늘 행복한 배우, 평생 연기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게 제 꿈이에요.”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