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도 이하 냉수대 해제 후 바로 30도 고수온
울진까지 번져…포항에서만 24곳에 23만마리 폐사
어민들 “취수라인 해저 깊숙이 안 옮기면 또 피해”
지난 8일 포항 남구 구룡포읍 석병리 영동수산 양식장. 10만 마리의 강도다리로 가득 차 있어야 할 수십 개의 수조는 거의 텅텅 비어 있었다. 건물 밖에선 직원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폐사한 강도다리를 플라스틱 상자로 날랐다. 지난 4일부터 나흘간 이 양식장에서 폐사한 강도다리는 8만 마리다. 양식장 대표 이병래(57)씨는 “작년에 고수온으로 1억원 가까이 피해를 봐 올해는 보험에 들었지만 보상이 절반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면서 “20년 전 외환위기 때 사업에 실패한 뒤 도다리 양식을 시작했는데 또 접어야 할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경북 동해안에 갑자기 닥친 고수온 현상으로 양식장 어패류 폐사가 속출하고 있다. 올해는 표층수온 20도 이하인 냉수대가 일주일 만에 10도 이상 치솟아 어민들도 속수무책인 상황이다.
영동수산 바로 옆 세부수산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물고기들의 떼죽음에 애가 탄 박성배(52) 대표는 매일 수백 만원을 들여 얼음을 사 수조에 넣었지만 나흘 만에 수 만 마리가 죽자 이마저도 포기했다. 박씨는 “양식업 30년 만에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해수 취수라인을 수온이 더 낮은 해저 15m 이상 깊이로 내리지 않으면 내년에도 양식장들이 피해를 볼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국립수산과학원이 발표한 8일 포항 앞바다 수온은 29.7도로, 아열대의 일본 오키나와 비슷한 수치였다. 고수온 현상이 북상하면서 지난 6일 울진 앞바다에도 주의보가 내려졌다.
9일 경북도에 따르면 고수온 현상이 나타난 지난 4일부터 포항에서만 남구 구룡포읍, 호미곶면, 장기면과 북구 송라면 양식장 24곳에서 강도다리, 넙치, 우럭 등 23만836마리가 폐사했다. 울진군 근남ㆍ기성면 육상양식장 3곳에서 2만7,921마리가 폐사했고 영덕군의 육상양식장 3곳에서도 1만1,631마리가 떼죽음 당했다. 경주도 양식장 1곳에서 1만2,190마리가 죽었다.
고수온 피해는 지난해도 있었지만 올해는 더 심각하다. 지난달 26일 냉수대가 해제된 이후 단기간에 수온이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국립수산과학원은 7월 말 이후 폭염에 의한 태양 복사열에다 지금까지 태풍이 없어 수온이 낮은 저층의 물이 표층과 섞이지 않은 것을 원인으로 분석했다.
고수온 현상은 이달 말까지 계속될 것으로 예상돼 양식 어민들이 초비상이다. 통상 바닷물 온도가 1도 올라가면 육지에서 5도 상승하는 것과 비슷해 해양 생물들은 큰 충격을 받는다.
경북도와 포항시는 현장대응반을 편성해 비상근무에 들어갔다.
포항시 오원기 수산진흥과장은 “수온이 높아지면 먹이공급을 중단하고 산소 공급장치와 물 순환 펌프를 최대한 가동해 어류 스트레스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혜기자 kj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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