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스포츠경제 정재호]
본지와 단독 인터뷰하고 있는 오한남 회장/사진=이호형 기자
배구 경기를 주관하는 대한체육회의 가맹 경기 단체로 1946년 3월 출범한 대한배구협회의 역대 회장 자리는 재벌 기업 총수나 정권을 등에 업은 장관 또는 중량감 있는 국회의원들이 맡아오는 게 관례처럼 여겨졌다.
자연스럽게 협회는 정치권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배구인들의 파벌 구도가 심해졌다.
시대가 바뀌고 배구인들 사이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한국 배구도 이제는 진짜 배구인이 수장에 올라 새로운 미래를 열 때라는 요구였고 그 결과물이 지난 6월말 선거에서 압도적인 지지(132명 중 118명이 참가해 77표 획득)를 얻은 오한남(65) 회장이다. 한 관계자는 “김응룡(75) 감독이 야구인들의 지지로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회장에 올랐듯 오 회장도 같은 케이스로 보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우려와 기대 속에 오 회장 체제가 최근 집행부를 인선하고 본격 출항했다. 잠실 종합운동장 내 사무실로 이사를 한 협회 회장실에서 만난 오 회장과 대화를 나누며 왜 그가 배구 계에서 덕망 있는 인물로 통하는지 알 수 있었다. 온화한 성품 속에 강한 승부사적 기질이 숨어있다. 그는 지금의 위기를 딛고 다방면에서 소통과 화합으로 배구 계를 이끌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당선 후 어떻게 지내시나
“바쁘다. 이 사람 저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이번에야말로 우리 배구인들이 꼭 해야 되겠다는 마음들이 강해서 내가 된 것 같다.”
-상황이 쉽지 않았는데 회장 출마를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원로님들이나 배구 선후배들은 지금 이 시점이 정말 중요하다고 했다. 전임 회장이 재판에 계류돼 있었다. 정통 배구인이 무조건 출마해야 된다고 권유해 고심을 많이 했다. 어깨가 무겁다. 산적해있는 사안들도 많아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중이다.”
-협회의 시급한 업무 과제는
“먼저 집행부를 구성했다. 엘리트 체육과 사회 체육이 합쳤다. 다 돌봐야 되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범위가 크다. 생활 체육은 엘리트보다 인원수도 많다. 잘 살릴 자신이 있고 잘하려고 한다. 한국 배구를 한 단계 더 끌어올려야 한다.”
-배구 계의 파벌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다 같은 배구인이고 한 식구다. 우리 편이건 저쪽 편이건 따질 게 아니다.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을 추스르고 불신을 없애야 한다. 다 끌어들이면서 소통해야겠다. 문제를 일으키는 제일 큰 본질은 인사라고 본다. 우리 쪽이냐 아니냐의 부분에 민감하다. 그래서 굉장히 조심스럽게 했다.”
-집행부 인사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기본적으로는 인사위원회를 만들어서 추천 받은 사람이나 내가 생각하는 사람, 열심히 일을 하는 젊고 참신한 사람들로 했다. 인사라는 게 그렇다. 100% 다 만족할 순 없다. 여하튼 개인적으로는 만족하고 지켜봐 달라. 내 의사를 반영시킨 건 기획 이사(안남수 전 현대캐피탈 단장)와 총무 이사(고병열 H&H 개발 대표)다. 투명하게 살림을 할 수 있고 앞으로 추진할 비즈니스에 머리를 빌릴 사람들이다.”
-협회가 처한 재정 문제는 어떻게 슬기롭게 해결해나갈 생각인가
“잘 운영하면 옛날 같은 악순환은 없을 것이다. 나도 얼마라도 사비(2억원 출연)를 내놓았다. 다만 내가 재벌이 아니라 몇 십억씩 내놓지는 못했지만 필요한 만큼 내놓으면서 스폰서도 받고 사업도 하면서 맞춰나갈 생각이다.”
-여자 대표팀 비행기 좌석이 논란이 될 만큼 열악한가
“키 큰 선수들이 이코노미 석을 이용하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힘들다. 그렇다고 비즈니스 석을 계속 탈 수는 없는 실정이다. 기존 요금의 세 배 이상이 든다. 매번 남녀를 다 해주다 보면 협회 예산이 거의 다 들어가야 된다. 그래서 이 문제도 장기적으로는 한국배구연맹(KOVO) 쪽하고 상의하고 대책을 세워야 된다.”
설명하고 있는 오한남 회장/사진=이호형 기자
-말한 대로 KOVO와 관계도 중요한데
"그쪽도 총재(조원태 대한항공 대표이사)가 새로 오셨다.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잘 풀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제일 큰 것은 대표팀 선수단 지원 문제다. 그 문제를 진지하게 상의해야 될 것 같다. 협회가 관리는 하되 어떤 식으로 관리를 해야 될지 서로 얘기하다 보면 방안이 나올 것이다. 그 동안 협회랑 연맹이 안 좋았다. 합의 하에 절충점을 찾는 게 좋겠다.”
-재정에 숨통을 틀 도곡동 협회 건물 처리 방안은
“보고 받은 바로는 132억여 원에 샀다. 지금 그 근사치로 사겠다는 사람이 있다. 그걸 팔면서 협회의 수입이 생기는 쪽으로 가면 괜찮아질 것이다.”
-향후 중점적으로 추진할 일정은
“역시 비즈니스다. 협회를 운영해나가려면 예산이 필요하다. 잘 연구해보겠다. 보니까 사업을 할 만한 게 있다. 예를 들어 남자 대표팀을 보러 진천에 갔다 왔는데 그때 든 생각이 훈련하고 있는 중간에 일본 팀이나 중국 팀을 불러서 A매치 평가전처럼 진행하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이렇게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방안을 나름대로 연구하고 있다.”
-서병문 전 회장 만나봤나
“(당선)되고 나서 한번 찾아 뵈었다. 그 후에는 아직 찾아 뵙지 못했다.”
-한국 배구의 국제 경쟁력 약화를 어떻게 보나
“내가 알기로 2000년대 초반 마산에서 아시아 선수권 대회를 유치한 이후에는 한국에서 국제 시합을 한 번도 안 했다. 그런 걸 다시 추진해서 붐을 일으켜야 된다. 대표팀에 정예 선수가 안 나오는 부분은 발상을 바꿔야 할 문제다. 구단에서는 대표팀에 가면 다칠까 봐 보호한다고 그러는데 그러면 연습 안 시키고 가만 두면 안 다치는 거다. 다치는 것이 걱정이면 대표팀에 갈 때 비즈니스 석은 구단이 해주면 좋지 않을까. 보내서 성적이 나면 저절로 국내에서 붐이 일어난다. 여자 국가대표가 나가서 성적이 나니까 프로 인기가 많이 올라온 걸 간과해선 안 된다.”
-심각한 유소년 배구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프로 측에 2군 얘기를 했다. 내가 볼 때 2군을 창단하는 데 선수 5명 정도 넣고 코치 한 명을 추가하면 된다. 2군이 있으면 대학이나 실업 팀을 더해 옛날같이 대통령배 식으로 대회와 사업을 추진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인프라를 키워서 부모님들이 배구를 시켜도 뭔가 비전이 있다는 인식이 생기게끔 해야 한다. 그 다음으로 유소년 팀을 창단시키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초등학교 팀을 창단할 때 꾸준하게 유지한다는 조건 하에 학교 예산을 확실하게 줘서 만들도록 하겠다. 시즌 중에는 아마추어 배구 대회를 하는데 그런 것도 참 좋은 것 같다. 배구 동호인들이 많아지는 건 우리 배구의 자산이다.”
잠실=정재호 기자 kemp@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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