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416건, 지난해 동기보다 늘어
아열대화 원인… 9ㆍ10월 특히 주의
“119죠? 집 마당에 벌집이 생겼어요. 도와주세요.”
8일 오전 9시40분 서울 강남소방서 영동119안전센터로 ‘벌집 제거’ 신고가 접수됐다. 논현동 주택 계단에서 주먹보다 조금 큰 크기의 벌집이 발견됐다는 건데, 신고자 동생은 이미 발목과 종아리 부근에 네 방이나 쏘였다는 다급한 목소리였다.
신고 즉시 특수소재 옷을 입고 현장에 출동한 소방대원들은 살충제를 뿌려 벌집 안팎 벌들을 일망타진한 뒤 빈 벌집을 들어 보였다. 신고자 정종숙(64)씨는 “벌들이 도심 주택에 집을 지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같은 집에 20년 넘도록 살면서 처음 겪는 일”이라고 했다. 이어 “다섯 살 손자가 벌에 쏘였으면 어쩔 뻔 했냐”고 가슴을 쓸어 내렸다.
연일 지속되는 무더위로 벌들의 활동이 왕성해지면서 도심 곳곳에서 ‘벌집을 없애달라’거나 ‘벌에 쏘였다’는 신고가 급증하고 있다. 8일 서울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7월 한 달간 서울시내 벌집 제거 출동 건수는 1,416건으로, 지난해 7월(1,268건) 대비 150건 가까이 늘었다. 이는 1~6월 출동 건수를 다 합친 1,224건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숫자로, 7월 한 달에만 하루 평균 45건 정도 출동했다는 얘기다. 신고된 벌집은 대부분 토종벌의 보금자리다.
강남구 대치동 소재 아파트 경비원 강모(75)씨는 “최근 (아파트)복도에서 벌집이 발견돼 소동이 있었는데, 10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했을 일”이라며 “지구온난화에 따른 생태계 교란으로 인간이 벌(罰)을 받는 것 같다”고 걱정했다.
실제 전문가들은 벌들의 ‘도심 습격’ 원인으로 한반도 아열대화를 꼽고 있다. 최용수 농촌진흥청 잠사양봉소재과 연구사는 “중국 남부와 동남아 지역에 주로 서식하던 ‘등검은말벌’이 10여년 전부터 기후가 고온다습해지는 국내로 유입되면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고 분석했다. 적응력이 강한 등검은말벌이 주요 서식지를 차지하면서 토종 벌들이 점차 도심으로 밀려오고 있다는 것이다. 등검은말벌이 꿀벌까지 잡아먹는 통에 양봉농가에 비상이 걸린 지도 오래다. 이에 생태전문가나 양봉농가는 “검은등말벌을 생태계 교란생물로 지정해 개체 수를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주택가에 집을 짓기 쉬운 녹지공간이 늘고, 열섬 현상 등으로 도심 기온이 점차 높아져 따뜻한 곳을 찾는 벌의 습성에 적합하다는 점도 서식지 이동의 이유로 꼽힌다. 소방당국 관계자는 “9~10월엔 말벌들의 활동이 가장 왕성해지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며 “벌집이나 벌떼를 봤을 때는 함부로 접근하지 말고 119 등에 신고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글·사진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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