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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칼럼] 에어컨 만세!

입력
2017.08.08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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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킨스쿠버를 처음 배울 때 가장 보고 싶은 동물이 뭐냐는 친구의 물음에 “상어”라고 대답하자 대뜸 “상어는 위험한 동물 아냐?”라는 물음이 되돌아왔다. 상어의 눈매와 몸매가 모두 무섭게 생기기는 했지만 사실 그다지 우리에게 위협적인 동물은 아니다. 1년에 상어에게 물려 죽는 사람은 채 열 명이 되지 않으니 말이다. 열 명의 목숨을 가벼이 여겨서 하는 말이 아니다. 매년 초식동물인 코끼리에게 100명이 밟혀 죽고 귀엽게만 보이는 하마에게 500명이 물려 죽는 것을 생각하면, 또 우리가 그토록 좋아하는 개에게 물려 죽는 사람이 2만 5,000명에 달하는 것에 비하면 상어에게 희생되는 사람의 수는 얼마 안 된다는 뜻이다.

우리가 상어를 겁내기보다는 상어가 사람을 두려워해야 하는 게 맞다. 고작 샥스핀 좀 먹겠다는 사람의 욕심으로 지느러미만 잘려나간 채 바다에 버려지는 상어가 매년 1억 마리가 넘는다. 덕분에 상어와 가오리 1,000여 종 가운데 25%는 멸종위기에 처했고 몇몇 종은 최근 15년 사이에 개체수가 98%나 감소했다. 상어가 보기에 사람은 정말 무서운 존재일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동물은 뭘까? 이 질문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사람’이라고 대답한다. 사람이 사람을 그렇게 나쁘게 보면 안 된다. 상어에게야 사람이 가장 무서운 동물이겠지만 어떻게 사람이 사람에게 가장 위험한 동물이겠는가. 물론 사람에게 목숨을 잃는 사람이 매년 48만 명 가까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더 위험한 동물은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모기. 매년 75만 명 정도가 모기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 물론 모기에게 물려서 과도한 출혈로 죽는 것은 아니다. 모기가 옮긴 말라리아 때문이다. 요즘도 매년 2~3억 명이 말라리아에 감염된다. 우리나라도 말라리아 청정국가는 아니다. 매년 700명 가까운 환자가 발생한다.

요즘엔 말라리아가 모기 때문에 생긴 병이라고 다들 알고 있지만 19세기 말까지도 말라리아는 나쁜 공기 때문에 전파된다고 믿었다. 말라리아라는 병명 자체가 이탈리아어로 ‘나쁜’의 뜻을 가진 mal과 공기를 뜻하는 aria가 합쳐진 말이다. 잘못된 진단은 잘못된 처방을 낳는다. 19세기 말 의사들은 말라리아를 막기 위해서는 늪지에서 발생하는 나쁜 공기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온 발명품이 말라리아 병동에 차가운 공기를 주입하는 장치다. 말라리아 병동에 찬 공기를 주입해도 환자들의 예후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이 시도는 역사상 최고의 발명으로 이어진다. 에어컨이 바로 그것.

최초의 전기식 에어컨은 1902년 7월에 발명되었다. 뢴트겐이 X선을 발명한 해가 1895년이고 그가 최초의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해가 1901년이며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한 해가 1905년인 것을 생각하면 에어컨은 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던 시기에 등장한 첨단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주인공은 제철소에 근무하던 전기 엔지니어 윌리스 캐리어. 1915년에 캐리어 주식회사를 설립한 바로 그 사람이다.

50만 년 전 불을 일상적으로 사용하게 된 인류에게 새로운 땅과 새로운 시간이 열렸다면 1915년부터 본격적으로 생산된 에어컨은 인류에게 여름을 선사했다. 원래 한여름에는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하지에 감자를 캔 후 8월 중순 이후 무와 배추를 심을 때까지 한여름에는 밭에 심을 작물도 없다. 학교도 문을 닫는다. 여름은 너무 덥기 때문이다. 그런데 에어컨이 여름을 즐기는 계절로 바꿔놓았다. 드디어 사람들은 한여름에도 극장에 갈 수 있었다. 그리고 더운 지방에 대도시가 생겨났다. 20세기의 에어컨은 50만 년 전의 불만큼이나 사람들이 살 수 있는 공간과 사람이 쓸 수 있는 시간을 확장시켰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에어컨 바람을 쐬기 위해 우리는 무수히 많은 발전소를 지어야 했고 마침내 핵발전소를 짓는 데도 거침이 없어졌다. 핵발전소 폐기물 처리비용과 핵발전소의 잠재적인 위험에 대한 걱정보다는 당장 내 머리 위로 쏟아지는 찬바람의 유혹이 훨씬 컸다. 여기에 대한 반성으로 올해 2월 이사하면서 에어컨을 옛집에 두고 왔다. 에어컨에 의지하여 여름을 이기려 들지 말고 더위를 온전히 견뎌내면서 자연에 순응하며 살겠다는 다짐이었다. 교만이었다. 7월 초가 되자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에어컨을 주문했고 배달되기까지 3주나 기다리면서 불면의 밤을 보내야 했다. 7월 마지막 날 마침내 배달된 에어컨 앞에서 나는 한없이 겸손한 자세로 찬바람을 쐤다. 최신 에어컨은 전기도 많이 안 먹고 염천인 요즘도 전력예비율이 30%에 육박한다는 소식에 마음이 조금 놓인다.

고백한다. 나는 에어컨 없이는 못 살겠다. 에어컨은 최소한의 인권의 문제다. 그런데 나만 더운 게 아니지 않은가. 아파트 경비실과 군대 막사 그리고 감옥에 에어컨을 달자. 창문도 없는 쪽방에서 하루 종일 견뎌야 하는 독거노인들을 위한 여름 숙소를 마련하자. 에어컨 만세!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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