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으로 전 재산 날린 김창훈씨
노숙인 자립 돕는 희망프레임 참여
광화문서 사진사로 제2의 인생
“다양한 사람 만날 수 있어 행복”
꽁지머리에 사진기를 든 중년 남성이 서울 광화문 광장을 찾은 관광객과 발을 맞추며 말을 건다.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9번 출구로 나오면 보이는 노란색 부스, ‘희망사진관’의 사진사 김창훈(46)씨다. “좋은 추억을 사진으로 남기세요”라는 김씨의 제안에 상대가 고민하는 눈치를 보이자 이내 승부수를 띄운다. “사진 한 장에 4,000원이에요. 라떼 보다 쌉니다.”
김씨는 사진사로 일하기 전엔 노숙인이었다. 해외 유학 시절, 카지노에 빠져 재산을 탕진하고 반년 동안 거리생활을 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노숙인 쉼터에서 7~8년 간 살았다. 아무런 삶의 의욕이 없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런 그의 마음을 다시 뛰게 한 건 사진이었다.
“2014년 칠레에서 열리는 홈리스월드컵에 참가했는데, 거기서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진작가를 보고 멋있다고 느꼈어요. 나도 남은 인생을 사진으로 멋있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마침 조세현 사진작가가 노숙인을 상대로 사진교육을 하는 ‘희망프레임’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2015년 이곳에 입학해 자신만의 프레임을 구성하고 노출, 초점, 구도를 맞추는 법을 차례차례 배웠다. 조 작가의 “여러분처럼 늦은 나이에 시작해도 저보다 더 잘 찍을 수 있다”는 격려가 큰 힘이 됐다. 얼마 안 가 다른 기회가 찾아왔다. 광화문 광장에 위치한 희망사진관에서 2년 간 활동하는 사진사로 선발된 것이다. 서울시 자활지원과가 운영하는 희망사진관은 사진으로 노숙인들이 자립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김씨는 이후 오전 10시부터 오후5시까지 광화문 광장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사로의 변신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학생 입장일 땐 사진이 마냥 재미있었지만 밥벌이가 되니 상황이 달라졌다. 그 중 제일은 바로 ‘영업’. 스마트폰 시대에 사진사가 찍어주는 기념사진을 원하는 사람이 부쩍 줄어들고 있다 보니 적극적으로 ‘고객 모시기’에 나서야 한다. 초반엔 하루에 한 장도 못 찍고 허탕을 치는 날도 있었다. 여전히 그가 ‘작업’을 건 3분의 1만 사진을 찍겠다고 나선다.
거절이 익숙해지면서 이제는 제법 고객 유치 노하우도 생겼다. 김씨는 “광화문 광장에 있는 궁중한복체험관에서 한복을 빌려 입는 외국인 관광객을 주로 상대한다”며 “단도직입적으로 ‘사진 찍으세요’라고 하지 않고 먼저 그 나라와 관련된 화제로 말문을 연다”고 설명했다. 해외경험이 많아 영어와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강점을 발휘한 것이다.
김씨는 곧 희망사진관과의 2년 계약이 끝난다. 그는 “광화문 광장은 떠나지만 다른 곳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기념사진 찍는 일을 계속 할 계획”이라고 했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일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자신이 찍은 사진으로 추억을 기념한다는 것도 보람이다. 김씨는 “상대방이 사진 잘 나왔다고 환하게 웃을 때가 가장 좋다”며 “앞으로 더 많은 나라의 사람들을 만나 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했다.
송옥진기자 clic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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