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택시운전사’의 흥행 질주에 독일 배우 토마스 크레취만(55)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영화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과 ‘작전명 발키리’ ‘킹콩’ 등 미국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로 친숙해진 그를 한국영화에서 새롭게 만나니 더 반갑다. ‘택시운전사’에서 그는 1980년 5월의 광주를 세상에 알린 독일 언론인 위르겐 힌츠페터를 연기한다.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피아니스트’의 양심적 독일군 장교 역할만큼이나 인상적인 출연작으로 한국 관객에게 기억될 것 같다.
지난해 여름을 한국에서 보냈던 크레취만이 영화 개봉을 맞아 1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 최근 서울 삼성동의 한 호텔에서 만난 그는 “시나리오가 매우 훌륭했고 장훈 감독이 미국 로스앤젤레스(LA)까지 나를 만나러 와 감동 받았다”며 “출연을 결심할 이유가 충분했다”고 말했다.
크레취만은 이 영화로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을 처음 알았다. 비록 자국 역사는 아니지만 이렇게나 비극적인 사건을 알지 못했다는 사실을 자책한 그는 장 감독을 통해 다큐멘터리와 여러 자료를 구해 보면서 37년 전 그날의 아픔을 몸에 새겼다. “힌츠페터 기자도 꼭 만나고 싶었는데, 영화를 준비하던 지난해 초 돌아가셨어요. 생전에 뵙지 못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크레취만의 마음이 움직인 데는 개인적 경험도 영향을 미쳤다. 옛 동독 태생인 그는 스무 살에 4개의 국경을 건너 서독으로 탈출했다. 동독에선 전도유망한 수영선수였지만 이후 배우가 돼 지금은 할리우드와 독일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저는 냉전 시대를 온몸으로 경험했습니다. 그 경험이 세계관 형성에 도움이 됐죠. 역사 안에서 반복되는 구조도 이해하고 있습니다. 광주의 비극에서도 유사한 구조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영화의 감성을 한층 가깝게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그는 “무엇보다 동료 배우들의 배려가 없었다면 촬영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고마운 마음을 꺼냈다. 해외에선 외국인 전문배우로 알려졌을 만큼 다양한 문화를 경험해 어느 나라에서든 적응이 빠른 편이었는데, 한국에선 뜻밖에도 언어적 장벽에 크게 부딪혔다고 한다. “낯선 언어도 시간이 지나면 대충이라도 뉘앙스를 알아챌 수 있는데 한국어는 문장의 시작과 끝이 어딘지도 모르겠더군요. 통역을 거치느라 종종 촬영이 지연되곤 했습니다. 그런데 동료들이 항상 내게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보고 맞춰줬어요. 그들은 최고의 가이드였습니다.”
힌츠페터를 광주로 데려간 택시운전사 만섭을 연기한 송강호는 “손짓 발짓이면 충분했다”며 크레취만과의 연기 호흡을 만족스러워했다. 크레취만도 “우리 사이엔 언어가 필요치 않았다”며 “이렇게 훌륭한 대배우와 연기할 수 있어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택시운전사’ 출연 이전 크레취만은 박찬욱 감독을 통해 한국영화를 접했다고 한다. ‘올드보이’ ‘박쥐’ ‘아가씨’ 등 박 감독의 영화를 모두 섭렵했다. 특히 박 감독의 할리우드 연출작 ‘스토커’를 좋아해서 자택 TV 화면의 색감을 ‘스토커’의 색감에 맞춰 조정했을 정도다. ‘택시운전사’ 출연으로 한국영화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더 깊어졌다. “박 감독뿐 아니라 장 감독도 저에게 특별한 존재가 됐어요. 이렇게 섬세한 연출자는 처음 만났습니다. ‘택시운전사’와 함께했던 시간을 소중히 간직하겠습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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