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의 정치적 편향성은 침묵을 만들어냈다. 이제 관성적 침묵을 깨고 ‘다양성 프로그램’의 편견에 대해 토론해야 한다.”
자신을 ‘선임 엔지니어’라 밝힌 익명의 구글 직원이 쓴 ‘반-다양성 선언’이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구글 내부망을 통해 알려진 이 내용은 이튿날 정보기술(IT) 전문 인터넷 매체 ‘기즈모도’에 공개되면서 공분을 사고 있다. ‘선언’은 사내 성별ㆍ인종적 다양성을 증진시키기 위한 노력이 ‘좌편향’ 됐으며,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려는 직원들의 입을 가로막는다고 쓰고 있다.
문제는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격차’를 논한 부분이다. 이 내용에선 “여성은 성격상 특정 아이디어보단 감정과 심미적인 것에 이끌리게 되며, 기술과학분야보단 사회적이고 예술적인 직업에 걸맞는다”며 “신경질적인 성미가 있어서 스트레스가 높은 일에 종사하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작성자는 이를 통해 “구글이 이런 생물학적 차이를 무시한 채 무조건 여성 편만 들어 그들의 고용과 임금을 늘리려 하는 것은 역차별’이라고 주장했다. 구글은 정말 그의 말대로 여성 편일까?
구글 엔지니어와 임원 중 여성은 20% 뿐
구글은 ‘다양성 부사장’을 따로 둘 정도로 사내 다양성 문제에 민감하다. 이들은 매년 ‘다양성 보고서’를 공개해 자사의 다양성이 얼마나 증진됐는지 보여준다.
지난 1월 공개된 2017 구글 다양성 보고서에 따르면, 구글의 직원 중 69%가 남성, 31%가 여성이다. 직군과 임원을 분류하면 그 비율은 달라진다. 기술직에서는 여성직원이 20%에 불과한 반면, 비기술직의 여성 직원은 48%에 달한다. 여성 임원은 25%로 지난해보다 1% 포인트 증가했다.
‘선언’의 작성자는 이런 차이를 ‘생물학적 요인’ 때문이라고 강조했지만, 이는 현실적 배경을 고려하지 않은 주장이란 분석이 많다. 미국의 임금 통계를 다루는 사이트 ‘페이스케일’에 따르면, 지난해 기술 분야에서 여성의 임금은 남성에 비해 최대 22%까지 차이가 났다. 또한 지난 4월 미국 노동부는 "구글이 남녀 성별에 따라 급여에 차이를 두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노동부는 추가 조사를 위해 수 차례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했지만 미온적인 구글의 반응으로 조사도 지연되고 있다.
게임 디자이너이 겸 칼럼니스트인 이안 보고스트는 “다양한 인종과 여성을 고용하려는 구글의 정책은 백인남성 중심으로 발전된 기술과학 분야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도덕적인 노력” 이라며 “소수자를 돕는 것이 ‘편향’ 이라고 보는 그의 주장이야말로 ‘강자의 편향’”이라고 말했다.
오래 묵은 논쟁 다시 시작되다
‘선언’은 IT업계 내부 성차별 문제의 새로운 단면을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이미 구글을 비롯한 유명 IT기업들은 2010년대 초반부터 성별격차 문제를 해결하려 해 왔다. 애플은 지난 2014년부터 3년 연속 여성의 고용을 늘려왔으며, ‘우버’ 등 스타트업 출신 기업들도 일제히 ‘다양성 보고서’를 공개하며 평등채용의 성과를 알리고 있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이 숫자 위주의 ‘보여주기식’ 노력으로 이뤄져 왔다는 지적도 나온다. 목표 달성에만 신경쓰다 보니 ‘선언’의 작성자와 같은 생각을 하는 직원들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미국 일간지 USA투데이는 낸시 리 전 구글 다양성 부사장 재직시절 직원의 3분의 1이 다양성 정책에 대한 반감을 보였다고 한다. 현재 구글 직원들 중 일부는 사회관계형서비스(SNS)를 통해 ‘선언’에 공감한다는 의견을 내비치고 있다.
구글은 결국 ‘질적 다양성 강화’라는 또 다른 과제에 직면하게 됐다. 지난달 새로 임명된 대니엘르 브라운 구글 다양성 부사장은 “사내 모든 직원들이 같은 의견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모두가 이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공유하고 토론하길 바란다”며 “다만 그 토론은 ‘성별 동일임금’ 등 기본적인 성평등 원칙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