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용호, 싸늘한 시선 속 입국
“강 장관과 대화 안 한다”
1시간 가량 왕이와 의견 조율
왕이 “핵실험, 탄도미사일 발사 말라”
아세안 10개국도 북한 규탄 성명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참석차 필리핀 마닐라를 방문한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6일 새벽(현지시간) 마닐라 시내의 숙소에 도착하고 있다. 마닐라=연합뉴스](http://newsimg.hankookilbo.com/2017/08/07/201708070192674395_1.jpg)
잇단 악재 탓에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필리핀까지 와서 일단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만 회동했다. 그러나 중국마저 도발을 중지하라고 북한을 압박하면서 챙긴 게 없는 모양새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 회의 참석차 6일(현지시간) 마닐라를 찾은 리 외무상은 이날 왕이 중국 외교부장만 만났다. 누구도 반기지 않는 손님이 돼서다. 양자 회담은 ARF 회의장인 마닐라 국제컨벤션센터에서 낮 12시쯤부터 1시간 동안 진행됐다. 북측 ARF 대표단 대변인이라 자신을 소개한 방광혁 북한 외무성 국제기구국 부국장은 회담 뒤 취재진에게 “두 나라 외무상들이 지역 정세와 쌍무(양자) 관계 문제에 대해 의견 교환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왕 부장은 “(회담에서) 중국은 북한에 안보리 제재 결의를 냉정하게 보고, 앞으로는 추가로 안보리 결의를 위반해 탄도미사일을 쏘거나 핵실험을 하지 말라고 요구했다”고 중국 매체들이 전했다. 왕 부장은 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미국 독자 제재는 여전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리 외무상은 앞서 이날 0시 30분쯤 마닐라에 도착했다. 북한이 참석하는 유일한 역내 다자 안보 협의체인 ARF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5월 취임한 리 외무상에게 두 번째 ARF다.
당초 북한은 공항 내 리 외무상 취재를 허가하지 말라고 주최 측에 요청했지만 이날 공항엔 취재진 수십명이 몰렸다. 쏟아지는 질문에 침묵한 채 그는 ARF 주최 측과 인사하고 공항 귀빈실에 잠시 들렀다 숙소인 마닐라 시내 한 호텔로 향했다. 숙소 앞에서도 입은 열지 않았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만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수행단 중 한 명이 대신 “만날 계획이 없다”고 짧게 답했을 뿐이다. 객실 앞까지 따라간 한국 기자가 ‘북한이 어떤 나라라 강조하고 싶냐’고 묻자 마지못해 한 “기다리라”라는 대답이 마닐라에 와서 그가 취재진에게 한 유일한 말이었다.
북한을 대하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의 표정도 예전 같지 않다. 지금껏 북한에 우호적이었던 아세안은 리 외무상 도착 직전 10개국 외교장관 명의로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 실험을 규탄하는 별도 성명을 내고, “고조되는 한반도 긴장에 엄중한 우려를 표명한다”며 “안보리 결의를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도착 직후엔 북한의 석탄ㆍ철광석 등 주요 광물 수출 금지 등이 골자인 유엔 안보리의 새 대북 제재 결의 2371호가 만장일치로 채택되는 등 대북 압박이 이어졌다.
강 장관의 적극성에도 리 외무상은 남북 회동을 거부했다. 방광혁 부국장은 한국 취재진과 만나 ‘리 외무상이 강 장관과 대화를 하지 않을 것이냐’는 질문에 “대화 안 한다”고 잘라 말했다. 실제 6일 저녁 비공개 ARF 환영 갈라 만찬 막바지까지도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거나 악수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리 외무상에게 말을 거는 외교장관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다만 7일 ARF 회의에서 남북 외교장관이 조우할 가능성은 아직 남아 있다.
마닐라=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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