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P2P 중금리 시장 선두주자
초창기 투자자 설득 어려웠지만
대출 200배 급등… 누적 800억 육박
저축은행ㆍ캐피탈도 금리 인하 추세
“고신용자 아니면 금리절벽 개선을”
은행에 신용대출을 신청했을 때 거절 당하지 않을 개인 신용등급은 최저 몇 등급 이상이어야 할까. 수입과 대출 규모, 상환 시기 등 구체적 대출 조건에 따라 다르겠지만 최소 3등급 이상은 돼야 한다는 게 금융권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실제 지난해 은행에서 신용 대출받은 사람 10명중 8명은 1~3등급의 고(高)신용자들이다.
때문에 개인 신용등급이 4등급 이하인 사람들은 돈이 필요할 때 저축은행ㆍ캐피탈사 같은 제2금융권 문을 두드린다. 그런데 은행에 비해 금리가 너무 높은 게 문제다. 개별 저축은행과 대출 상품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저축은행의 신용대출 금리는 20% 안팎에 이른다. 4% 안팎의 은행 신용 대출 금리보다 5배 정도 높다. 은행권 문턱을 넘지 못하면 맞닥뜨릴 수 밖에 없는 우리나라 금융권의 고질적인 문제인 ‘금리절벽’ 얘기다.
금리절벽에 떨어진 사람들에게 금융 사다리를 놓겠다며 창업한 30대 젊은 사업가가 있다. 국내 중(中)금리(5~15%) 시장의 개척자로 불리는 개인간 거래(P2P) 대출 회사 ‘8퍼센트’의 이효진(35) 대표다. 회사명 ‘8퍼센트’는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은 중금리 시장의 대표금리 8%를 의미한다.
지난 2일 서울 광화문 8퍼센트 본사에서 만난 이 대표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법정 최고이자에 육박하는 이자로 돈을 빌려 써야 하는 현실이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외국에서는 중금리 시장을 겨냥해 P2P 대출 시장이 활성화 됐다는 얘기를 듣고 2004년 11월 회사를 바로 창업했다”고 말했다.
P2P 대출은 투자자와 대출자를 연결해 주고 그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 사업 모델이다. 대출자는 수수료를 내는 대신 제2금융권보다 싼 금리로 돈을 빌릴 수 있다. 투자자도 은행에 돈을 맡기는 것보다 높은 투자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외국의 성공 사례와 달리 국내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돈이 필요한 대출 신청자는 많았지만 고신용자가 아닌 중ㆍ저 신용자들에게 자기 돈을 빌려주겠다고 선뜻 나서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신생회사가 벌이는 P2P 대출사업에 ‘내 돈을 맡겨도 될까’ 하는 의구심도 투자자들이 지갑을 열지 못하게 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이 대표는 “처음에 투자자로 나선 사람들은 ‘창업을 했으니 잘해보라’던 주변 지인들이 거의 대부분이었다”며 “우리나라에서 중신용자들을 대상으로 한 P2P대출 시장이 쉽게 정착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영업도 잘 안 되는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8퍼센트는 2015년 1월 금융당국으로부터 사이트를 강제 폐쇄당한다. 은행, 저축은행, 대부업체도 아닌 일반 회사가 대출 사업에 손을 댔다는 이유에서였다. 자칫하다가는 사업을 접어야 할지도 모를 최대 위기였다.
하지만 이 위기가 오히려 기회가 됐다. 언론 등에서 8퍼센트 사이트 폐쇄 사례를 거론하면서 핀테크 시대를 따라오지 못하는 법령과 규제 문제를 공론화 하기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회사 인지도는 크게 올라갔고 8퍼센트가 추진하는 P2P대출 시장 개념을 이해하는 사람도 덩달아 늘었다.
이 대표는 “한달 만에 자회사를 통해 대부업 등록을 하고 다시 사이트를 열었을 때, 돈을 투자하겠다는 사람들이 밀물처럼 몰려들었다”며 “사이트 폐쇄 전 5,000만원에 불과했던 대출 실적은 1년만에 100억원으로 200배 이상 늘어났다”고 말했다. 현재 8퍼센트의 누적 대출금액은 800억원에 육박한다.
하지만 8퍼센트가 극복해야 할 과제들도 아직 많다. 대표적인 게 연체율 관리다. 회사가 소개한 대출자가 돈을 못 갚을 경우 그 손해는 고스란히 투자자의 몫이 되기 때문에 연체율 상승은 P2P대출 사업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심각한 문제다.
이 대표는 “대출 신청자의 상환능력 등을 꼼꼼히 검증하면서 현재 연체율은 저축은행권보다 낮은 1% 이하로 관리하고 있다”며 “투자자의 리스크를 분산시키기 위해 한 사람에게 투자할 수 있는 금액도 채권금액의 5%를 넘지 못하게 제한하고 있다”고 말했다.
8퍼센트는 현재 우리나라 금융권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8퍼센트로 대출자가 몰리면서 그 동안 중간 등급 신용자들에게 고금리 대출을 해줬던 저축은행과 캐피탈업체들이 대출 금리를 낮추며 중금리 시장으로 뛰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최근의 금융권 변화에 대해 “바람직한 현상”이라면서도 “아직도 더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무조건 고금리를 매기는 제도권 금융관행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며 “8퍼센트의 성장으로 관련 시장이 커지면 국내 금융권의 고질적인 금리절벽 문제도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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