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삶과 문화] 이 주사 아픕니다

입력
2017.08.06 13:26
0 0

나는 좀처럼 아플 일 없는 건강한 청년이었지만, 간단한 수술을 받은 적이 한 번 있다. 발톱이 발가락 안쪽으로 파고 들어가는 내성발톱 수술이었다. 엄지발가락을 부분 마취한 후 파고 들어간 발톱을 절개하고 꿰매는, 지금 생각하면 단순 시술에 가까운 것이었다.

하지만 이 마취의 기억은 유독 강렬했다. 이 과정을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모든 발가락은 좌우 아래위로 네 개의 신경이 지나간다. 이 신경에 전부 마취제를 주입하면 그 아래는 일시적으로 감각이 없는 상태가 된다. 발가락의 좌측 기저부에 주사기를 꽂고 마취제를 주입한 다음, 더 깊이 주사기를 꽂고 한 번 더 주입한다. 이 과정을 우측에도 반복하면 마취가 완료된다. 문헌상으로도 실제로도 복잡하지 않은 과정이다.

동네 정형외과 선생님은 마취하기 전 나에게 말했다. “이거 많이 아픕니다.” 나는 조마조마한 긴장감으로 예견된 고통을 기다렸고, 선생님은 아랑곳없이 내 예민한 발가락 신경에 바늘을 꽂고 주사기를 눌러 마취제를 쏘았다. 세상에. 그건 그냥 ‘많이 아픈’게 아니었다. 나는 순간 우주의 분자들이 전부 내 발가락 신경을 꾸짖으며 성을 내고 있다고 느꼈다. 사람 발가락에 사람이 저렇게 깊이 주사기를 꽂는 방법이 있다니. 그 통증은 좀처럼 아플 일이 없던 청년에게 충격적인 것이었다.

그 외에 더 이상 아플 일이 없던 나는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의사가 되었다. 사람들은 다양하게 부딪히고 찢어져 나를 찾아왔고, 그것들은 인류 보편적으로 매우 아파 보였다. 그리고 나는 치료 목적으로 사람들을 더 아프게 만드는 다양한 술기를 배웠다. 개중에는 내가 받았던 발가락 신경차단술과 내성발톱 절개 및 봉합술도 있었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환자를 아프게 만드는 술기를 행하기 전에 이렇게 말한다. “이거 많이 아픕니다.” 하지만 발가락을 마취할 때는 이렇게 말한다. “환자분, 이거 진짜 완전히 아픈 겁니다. 꼭 잘 참아주세요.” 그리고 유독 발가락에 주사를 놓을 때면 큰 죄책감이 들고, 끝내고 나면 환자의 인내심에 대견함마저 든다. 그러던 나는 마취해야 할 발가락 앞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나는 이 통증이 다른 통증보다도 유난히 아프기에 보듬고 있는 것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았다. 이 고통은 당연히 날카롭게 아프지만 이곳에는 사지가 절단되거나, 관절이 빠지거나, 죽어가는 사람까지 온다. 그 고통은 누가 보더라도 지나치게 거대한 것이라서 우리는 그들에게 굳이 아픔을 이해한다는 말을 과하게 덧붙이지 않는다. 다만 이 발가락은 유일하게 내가 경험한 것이기에 나는 내 환자들에게 이렇게 생생하게 말하는 것뿐이다. 그러고 보면 처절한 고통을 다루는 사람이, 막상 실존하는 고통의 너른 세계에서는 걸음마도 떼지 못한 사람인 셈이다.

나는 환자가 앓는 질환을 보며 어느 정도의 불편함과 고통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것들을 평생 직접 다 겪어보기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의학적 경험과 지식을 쌓은 의사도 좋은 의사가 될 수 있겠지만, 더불어 자신의 삶을 지긋하게 보내고 고통을 예민하게 겪어본 의사도 좋은 의사가 될 수 있겠다 싶었다. 유산으로 내원한 환자에게 손을 얹고 조용히 자신의 아내가 유산했던 이야기를 꺼내던 어느 선생님처럼, 생이 길어질수록 이해할 수 있는 고통의 가짓수가 늘어가는 것이다.

나는 아직 젊고 특별히 아픈 적도 없으며 주변 사람들도 건강하다. 그러나 삶이 흘러갈수록 나는 더욱 실제 고통에 가까워질 것이다. 그렇다면 점차 내 환자들에게, 전부가 아닌 일부라도, 조금 더 내가 겪은 일처럼 이해하거나 공감하며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나는 나이가 들어가며 다양한 고통의 편린을 마주해도 좋다는 생각이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