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레드존에 들어온 북한
한미가 계속 선 다시 그으며
“넘어오면 안 돼” 어르는 상황
지난달 29일 문재인 대통령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발사대 4기 추가 배치 지시는 의외였고 전격적이었다. 정부가 전날 환경영향 평가 절차를 시작하겠다고 발표한 직후여서다. 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누차 사드의 군사적 효용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던 만큼 사드 배치를 미루기 위한 수순이라는 해석이 많았다. 발표 당일 심야에 이뤄진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 발사가 명분이었지만, 청와대는 이미 발사 징후를 파악한 상태였던 만큼 완벽한 설명이 되지는 않는다. 정부가 돌연 태도를 바꾼 막후 사정을 따져보기 위해 청와대와 외교안보팀 기자들이 카톡방에 모였다.
판문점 메아리(메아리)=문 대통령 지시로 비록 임시지만 말 많았던 사드가 배치됐습니다. 청와대는 어떻게 설명하나요.
고구마와 사이다(사이다)=북한의 도발 수위가 임계점에 다다랐다고 봤기 때문에 배치를 지시했다고 하죠.
올해는 가을야구(가야)=환경영향평가 시작한다고 발표한 지 하루도 안 돼 사실상 배치를 해버린 건 영 모양 빠진 일이었지요. 우리가 쓸 수 있는 카드를 다 소모해버렸으니까.
사이다=지금은 미중 간에 줄타기를 하기보다 분명한 입장을 보여야 하는 상황이란 게 청와대 내부 판단이라고.
가야=하지만 결국 이렇게 될 일을 미루다 미국 심기도 건드리고, 중국은 등돌리고, 궁지에 몰렸죠. 북한 도발 대응 방안 중 중국 카드는 사실상 날아갔다고 봐야 하고요.
삼각지 미식가(미식가)=한국이 사드 배치를 철회하지 못하리라는 걸 중국이 알고 있는 상황에서 사드가 외교적 레버리지로 한계가 있었다는 생각을 청와대가 한 듯해요. 그럴 바에 국내 여론이라도 끌어오자고 판단한 거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당나귀)=여당 내에선 당초 환경영향평가로 시간을 벌고,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중국과 관계를 개선한다는 시나리오가 돌았는데, 결과적으로 실현할 수 없게 됐죠.
가야=문제는 타이밍이죠. 환경영향평가도, 북 미사일 도발에 대책을 내놓는 것도 다 중요하지만 두 가지가 엉켜버리는 바람에 엉망이 됐잖아요.
돈 없는 배트맨(배트맨)=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서를 보면 북한 정책 공조 부분에 ‘Lock-step’이란 표현이 등장하는데 이게 상당히 찝찝한 용어예요. 직역하면 ‘자물쇠를 채운 스텝’이고 ‘한치 오차도 없는 발맞추기’라는 뜻이죠. 위키피디아를 보니 19세기 미국 감옥에서 죄수들이 딱 붙어 일렬로 이동하는 방식을 가리키는 말이었답니다. 미국이 우리에게 ‘북한 문제는 딴 소리 말고 우리 보조에 맞춰 따라오라’고 아주 강하게 요구한 거죠. 좋게 보면 한미 간 ‘철벽 공조’지만 굴욕적 표현이기도 해요. 이게 사드 배치 문제에서 그대로 드러난 셈입니다.
메아리=임시라곤 해도 철회하기 쉽지 않아 보이는데요.
가야=낙장불입이죠.
사드 환경영향평가로 시간 벌고
평창올림픽으로 중국과 관계 개선
시나리오 돌았는데 물거품으로
기술개발 진행형ㆍ사거리 입증
북한 ICBM에 미국이 안달할 만
메아리=레드라인 얘기 해보죠. 미국이 그어놓은 금지선 같은 건데, 북한이 넘은 건가요?
가야=일찌감치 넘었죠. 하지만 인정하기 싫어 둘러대는 것 같아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 심정이라고나 할까. 이미 레드존에 들어온 북한을 한미가 계속 선을 다시 그으면서 “넘어오면 안 된다”고 어르고 달래는 상황 아닐까요.
미식가=ICBM 능력도 능력이지만, 북한을 컨트롤할 수 있느냐가 레드라인의 기준이라는 해석도 나옵니다.
당나귀=레드라인 공방도 정부와 청와대가 이슈 관리에 실패한 탓일 수 있습니다. 문 대통령이 레드라인을 언급한 뒤 이낙연 총리와 송영무 국방장관이 조금씩 뉘앙스 다른 말을 해 정부 내 혼선이 있는 것 아니냐는 논란을 자초했죠.
가야=국방부는 레드라인 얘기만 나오면 입을 다물어 버립니다.
사이다=공개적으로 우리가 제기할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우리가 규정해 버리면 선택지가 줄어드니까요.
메아리=전략적 모호성을 언급하고선 사드든 레드라인이든 모호하지 않은 행동을 하는 게 문제일 수도 있겠네요. 화성-14형 성능 얘기 좀 해 볼게요. ICBM급 미사일이라는 이상한 표현이 등장했어요. 어떤 조건을 갖춰야 ICBM이 되는 거죠?
가야=고도 100㎞ 밑이 대기권인데, 미사일이 밖으로 나갔다 다시 들어올 때 7,000~8,000도의 고열과 엄청난 압력이 발생해요. 탄두가 이걸 견뎌내고 온전해야 목표 상공 위에서 터질 수 있는 건데요. 북한이 거기에 필요한 재진입 기술을 가졌는지가 불투명하다는 게 우리 입장입니다.
사이다=미 전문가들도 재진입 실패 얘기를 거론했죠.
가야=북한이 아직 이 기술을 갖지 못한 건 분명해 보여요. 그렇다고 우리가 북한은 ICBM이 없다며 무시할 수 있느냐? 오히려 반대죠. 북한이 여태껏 보여준 능력만으로도 이미 상당한 위협이니까요.
사이다=기술 개발은 진행형이고 사거리는 사실상 입증됐고, 미국이 안달할 만하죠.
메아리=북 도발에 남 사드에, 우리가 주도해 대화로 북핵 문제를 풀겠다는 문 대통령 베를린 구상 실천이 힘들어진 걸까요.
가야=운전대를 잡기는커녕 아직 운전석 문도 못 열었다는 지적까지 나옵니다.
사이다=베를린 구상은 A부터 Z까지 다 나열한 거라 좀 우려되긴 했죠. 청와대나 정부가 북한과 조율은 없었다고 했는데, 북한 반응을 보면 정말 그런 것 같고요. 그런 상황에서 북한이 우리 정부 제안은 외면하고 바로 미국과 거래를 하려 하니 쉽지 않아 보입니다.
배트맨=청와대는 우리가 대북 압박 국면에 미국과 강하게 보조를 맞춰 놔야 나중에 진짜 중요할 때, 즉 관여나 협상의 순간에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생각인 듯합니다. 참여정부 때 미국과 어긋나면서 대북 정책이고 뭐고 다 꼬였던 경험을 반추한 것 아닌가 싶어요. 얼핏 보면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이 보수 정부와 비슷하지만, 다른 구상이 깔려 있는 거죠. 성패를 평가하기는 아직 이른 것 같습니다.
메아리=주도권을 찾아올 수 있을까요.
가야=사드로 미ㆍ중 두 큰형과 모두 불편해져 과연 잘 될지 걱정입니다.
사이다=대화에 집착한다는 비판이 적지 않아서 북한에 파격적 카드를 제시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죠.
미식가=개성공단 재개나 5ㆍ24 조치(남북 교류 중단) 해제를 비핵화와 별개로 논의하자는 강수를 두지 않는 이상 북한이 대남 대화에 매력을 느끼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가야=정부가 정말로 북한과 물밑 접촉을 전혀 안 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북한과 아무 사전 교감 없이 대화 제의를 한 게 적절했는지 의문도 들고. 북한에 등을 돌렸던 박근혜 정부조차도 비공개로 3차례나 군사회담을 했거든요.
사이다=저도 물밑 접촉이 있어야 한다고 보는데, 물꼬 트는 게 쉽지는 않아 보여요.
가야=어제 누가 그러더라고요. 트럼프가 아베와 52분이나 통화한 건 문 대통령을 향한 무언의 시위라고. 전략과 타이밍, 거기에 맞는 메시지. 이 3박자가 다 헝클어진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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