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획 방화벽이 화염ㆍ연기 차단
런던 아파트와 달리 사상자 0명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의 84층짜리 초고층 아파트 ‘토치 타워’(Torch Tower)에서 4일(현지시간) 대형 화재가 발생했지만 사상자 없이 약 3시간 만에 진압됐다. 지난 6월 8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영국 런던 그렌펠타워 화재 때처럼, 이번에도 건물의 절반 이상이 불길에 휩싸이면서 커다란 인명피해가 우려됐으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새벽 1시쯤 토치 타워에서 큰불이 나 주민들이 긴급 대피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67층에서 시작된 원인 미상의 불은 건물 위아래로 번졌고, 그 결과 40개 층 이상이 불에 탔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두바이 소방 당국은 “민방위 측에서 주민들을 성공적으로 대피시켰으며, 4개 소방대와 경찰 등을 투입해 불길을 잡았다”며 “지금까지 보고된 사상자는 없다”고 밝혔다. 이날 화재는 새벽 4시쯤 완전히 꺼졌다. 2011년 두바이 마리나 요트 선착장 인근에서 문을 연 311m 높이의 토치 타워는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높은 주거용 건물로, 682가구가 거주 중이다. 1채 값이 50만달러에 이르고 수영장까지 갖춘 호화 아파트다.
이날 화재는 여러모로 그렌펠타워 화재 참사를 연상시키고 있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토치 타워가 런던 그렌펠타워와 유사한 외장재를 쓴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불길 확산의 원인으로 건물 외벽에 장착된 ‘가연성 외장재’를 꼽았다. 그렌펠타워 화재 참사의 주범이었던 가연성 외장재란 건물 외관 윤색에 쓰이는 것으로, 불길을 순식간에 번지도록 하는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 중간층에서 시작된 불길이 외벽 한쪽을 타고 위쪽으로 빠르게 퍼지는 모습도 그렌펠타워 때와 비슷했다. 다만 그렌펠타워 화재와는 달리, 불이 옆으로는 번지지 않아 건물 전체를 감싸는 식이 되지는 않았다.
때문에 이날 화재가 대형 참사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에 관심이 쏠린다. 토치 타워는 2015년 2월에도 화재가 발생했었는데, 이때에도 사상자는 없었다. 당시 영국 인디펜던트는 “세계의 초고층 빌딩들은 화재 발생 시 화염, 연기의 확산을 최소한으로 차단하는 ‘화재 구획’(fire compartmentation) 방식으로 설계됐고, 소방대원들이 접근할 비상 방화통로도 마련돼 있다”며 “2001년 9ㆍ11 테러 이후 점점 강화되는 설계 방식”이라고 보도했다. 반면 1974년 완공된 그렌펠타워는 스프링클러조차 갖추지 않은 노후건물이다. 결국 ‘방화 설계’ 여부가 두 건물의 운명을 좌우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로이터통신은 그렌펠타워 화재 당시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안내방송과 화재 경보가 토치 타워에선 제 역할을 했다고 보도했다. 토치 타워의 한 주민은 “자고 있는데 갑자기 알람이 울렸고, 계단을 통해 옥상으로 올라가는 데 10분 정도 걸렸다”고 말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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