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 성지된 강남 기사식당 두 곳
개발제한 풀리며 건물 신축 움직임
밥값 저렴하고 주차공간 넓어 쪽잠
“불 안꺼지는 몇 안되는 쉼터였는데…”

택시기사 성모(61)씨는 끼니 때면 서울 강남구 역삼동으로 운전해 ‘버스’로 갈아탄다. 손에 드는 건 운전대나 교통카드가 아닌 음식쟁반과 수저. 빌딩들 사이 한 구석에 자리 잡은 낡은 버스, 그가 밥을 먹기 위해 가는 ‘스낵카’다. 성씨는 “버스는 달리지 않지만, 음식 나르는 직원과 수저 든 기사 손은 쉴새없이 움직이는 곳”이라고 웃었다.
실제 3일 찾은 버스 안에는 창 밖을 보며 홀로 앉아 식사를 즐기는 손님들로 북새통이었다. 그러나 성씨는 요즘 버스에 오를 때마다 마음이 짠하다. “이런 모습도 이제 보고, 누릴 수 없을 것 같다”는 한숨. “곧 스낵카 운영을 하지 않기로 했다”는 얘기들이 나오면서부터다.
성씨가 즐겨 찾는 스낵카는 역삼동 르네상스호텔사거리 ‘스낵카 기사식당’을 비롯해 지하철 분당선 한티역 8번 출구 앞 ‘영동 스낵카’, 관악구 신림동 ‘콜럼버스 스낵카’ 세 곳이다. 이 가운데 강남에 있는 두 곳은 특히 ‘택시기사의 도심 안식처’로 첫 손에 꼽히는 명소다. 우동 국수 등 한 끼 식사가 4,000~6,000원으로 강남 한복판치고는 저렴한 데다, 자리 배치도 버스 창가에 하나씩 돼 있어 최상의 ‘혼밥’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버스 앞 너른 공터는 넉넉한 주차공간이 돼 주고, 밥을 먹지 않고 주차장에 차를 세워둔 채 쪽잠을 자더라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 성씨를 비롯해 이곳을 자주 찾는 이들이 “이곳이야말로 ‘혼밥의 성지’라고 말하는 이유다.

하지만 이 중 영동 스낵카가 이르면 내년 문을 닫을 수 있다는 소식에 기사들 마음이 편치 않다. 1982년 첫 주인이던 이재영(90)씨가 93년 지금 자리로 옮겨온 뒤 명절이나 휴일에도 늦은 밤까지 영업을 멈추지 않았던 곳이라, 안타까움은 배가 되고 있다. 현 주인 박윤규(59)씨는 “서울아시안게임을 2년 앞둔 84년, 정부가 당시 한 자동차회사에 스낵카 전용 버스 13대를 위탁 제작해 보급한 것 중 하나”라며 “그 뒤로 단 한 시간도 문을 닫은 적이 없다”고 했다.

손님들의 안타까운 마음만큼 주인 박씨의 고민도 깊다. 영업을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한 결정이 자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자리가 지난해 말 개발제한구역에서 해제되면서 상업용 건물을 지을 수 있게 됐는데, 토지 소유주들이 신축 건물을 짓기로 하면서 사실상 버스의 보금자리가 사라지게 된 것이다. 다른 곳으로 버스를 옮길 수도 있겠지만 임대료 등을 생각하면 다른 곳에 가서 지금처럼 싼 값에 밥을 파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박씨는 말한다.
식당 문을 닫은 후 스낵카를 어찌 처리할지도 걱정이다. 앞서 서울시는 2015년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박씨 스낵카를 지정했는데, 박씨는 시가 맡아 줬으면 하는 게 솔직한 속내다. 시 관계자는 “미래유산으로 지정됐지만 주인이 버스를 어떻게 할지 우리가 강제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라면서 “미래유산 보존 대책을 차차 논의해 보겠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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