촐랑거리는 맑은 물에 새우 여덟 마리가 바쁘게 노닌다. 파닥파닥, 파닥파닥. 새우를 건질 수는 없다. 그림 속 새우니까.
‘중국의 피카소’ ‘중국 국민화가’라 불리는 치바이스(薺白石ㆍ1864~1957)가 화선지에 필묵으로 풀어 놓은 새우다. 거의 한 호흡에 그린 머리와 몸통, 꼬리에 눈을 찍고 다리, 수염을 쓱쓱 얹었다. 미묘하게 번진 먹의 농담은 반투명한 새우 딱지를 꼭 닮았다. 99x34㎝짜리 화폭은 생동감으로 충만하다. 극사실화보다 어쩌면 더 사실적이다.
대표작 ‘새우’(1948)를 비롯해, 치바이스의 고향인 중국 후난성박물관이 소장한 그림, 서예, 전각 등 시기별 작품 50점이 서울에 왔다. 한중 수교 25주년을 기념해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서 열리는 ‘치바이스-목장(木匠)에서 거장(巨匠)까지’. 치바이스의 유품 83점, 한중 작가들이 치바이스에 바치는 오마주 작품 43점도 선보인다.
고고한 문인들이 매란국죽에 매달릴 때, 치바이스는 새우며 개구리, 개, 쥐, 닭, 벌레, 채소, 농기구 같은 사람 냄새 나는 것을 그렸다. 치바이스의 태생이 그랬다. 찢어지게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몸이 허약해 농사 대신 목공을 배웠다. 그림을 거의 독학으로 배워 거장이 됐다. 27세에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치바이스는 70세를 지나서야 “내가 이제 그림 좀 그린다”고 했다고 한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을 놔두고 신기한 것을 그리는 것은 본질을 버리고 괴이함을 지어내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같지 않은 가운데 같은 것을 그려낼 수 있어야 한다.” 평범한 소재를 비범하게 해석하고 독창적으로 그린 치바이스의 철학이다. 독특한 필묵 언어로 남긴 작품은 시ㆍ서ㆍ화를 합해 수만 점이다.
치바이스는 새우를 많이 그렸다. 어린 시절 허드렛일을 마치고 개울에 발을 겨우 씻는데 피가 철철 흘렀다. 새우에 물린 것이었다. 지독한 가난과 유년의 아픔을 상징하는 새우를 치바이스는 따뜻하고 발랄하게 묘사했다. 치바이스의 그림에선 쥐나 벌레도 명랑하다. ‘문화혁명 때도 작품을 보호받은 친근한 인민예술가’로 사랑 받는 이유다.
치바이스는 장검을 휘두르듯 대담하게 붓을 썼다. 초본을 그리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대상을 살아 있는 것처럼 그려냈다. “형상을 꿰뚫어 보고 본질을 추출한 덕분”(이동국 서예박물관 수석큐레이터)이다. 오마주 작품을 낸 사석원 작가는 “보통 작가가 먹색을 제대로 내는 데 40년이 걸린다고 하는데, 치바이스 작품은 400년 걸려도 따라 하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치바이스는 원색도 과감하게 썼다. ‘치바이스 칼라’다. 병아리는 샛노랗게, 꽃은 새빨갛게 그렸다. 전시에 나온 ‘병아리와 풀벌레’(1940)는 노랑 반, 먹 반이다.
치바이스는 세계 미술시장에서 비싸게 팔리는 작가다. 대표작이 요즘 50억원대에 거래된다. 새우 시리즈는 30억원대다. 후난성박물관 유강 학예실장은 “새우 한 마리에 2,3억원대인 셈”이라며 웃었다. 2011년 중국 경매에서 한 작품이 700억원대에 낙찰됐다가 위작 시비가 붙어 거래가 불발된 적도 있다. 이번 전시 작품의 보험가액은 1,500억원에 달한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한중 관계가 얼어 붙은 이후, 대형 예술 교류가 성사된 건 처음이다. 양국 정부가 전시를 후원한다. 유강 실장은 “정치와 문화예술은 별개”라고 했지만, 중국 당국 분위기는 여전히 냉랭하다고 한다. 전시는 10월 8일까지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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