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독대 자리에서 자신의 경영권 승계 지원이나 삼성 현안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며 뇌물 공여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부정 청탁 대가로 최순실씨 딸 정유라(21)씨 승마지원을 해달라는 박 전 대통령의 요구 또한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 부회장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김진동) 심리로 2일 열린 자신과 삼성 전ㆍ현직 임원 뇌물공여 혐의 사건 공판에서 이같이 밝히며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공소 사실을 부인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에게 433억원대 뇌물을 공여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뒤 넉 달 만에 처음으로 법정에서 입을 열었다.
이 부회장은 “박 전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삼성 관련 현안을 언급한 적 없느냐”는 특검 신문에 “제가 말씀 드린 건 없는 걸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현안이나 애로사항을 정리한 자료를 안종범(58)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에게 건네라고 삼성 미래전략실 임원들에게 전한 사실도 없다고 했다.
이 부회장은 뇌물죄 입증의 유력한 증거로 여겨진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 내용도 부정했다. 지난해 2월 15일 박 전 대통령과의 3차 독대 뒤 ‘금융지주 회사-Global 금융-은산(은행과 산업자본) 분리’가 메모로 적힌 데 대해 “그와 관련된 얘기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빙상ㆍ승마 관련 메모도 “두 분(박 전 대통령과 안 전 수석)이 그런 얘기를 하셨는지는 모르지만 전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특검은 2014년 5월 이건희 삼성 회장이 쓰러진 뒤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등과 관련해 금융지주사 설립 등 현안을 청와대 차원에서 해결해주는 대가로 삼성 측이 미르ㆍK스포츠재단 출연금이나 정유라씨 승마 지원을 했다고 보지만 이 부회장은 전면적으로 부인한 것이다. 특히, 그는 특검이 경영권 승계 일환으로 보고 있는 구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서도 “양사와 미래전략실에서 다 알아서 한 일로, 제가 함부로 개입할 게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박 전 대통령의 직접적인 대가성 지원 요구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 부회장은 “박 전 대통령이 문화융성 등 분야 협조를 얘기했지만 두 재단 지원이나 정유라를 직접 언급하며 승마지원을 해달라고 하진 않았다”고 언급했다. 자신은 3차 독대 전까지도 정유라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고 했다. 앞서 최지성 전 미전실 실장은 “후계자에게 부담이 될까 봐 일부러 알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날도 증인으로 출석하지 않았다. 지난달 19일에 이어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구인장 집행을 거부했는데, 이달 7일이 선고 전 결심공판인 점을 감안하면, 이 부회장과의 법정 대면은 무산될 가능성이 커졌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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