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지원금 끊는 행정명령에
납치 성폭행 피해 등 여성 돕던
쉼터ㆍ의료시설 대폭 축소 위기
최후 보금자리 제공해 온 IPPF
“의도치 않은 임신 650만건
음지 낙태시술 200만건 늘 것”
“결혼을 거절했더니 마당에 나를 묶고 목을 베려고 했습니다.”
최근 수개월간 극단주의 무장조직 보코하람에 피랍돼 ‘성노예’로 살았던 나이지리아 여성 메나쉬는 수차례 성폭행을 당한 끝에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다. 손발이 묶인 채 흉기에 찔린 메나쉬는 폭행 순간 납치범이 공중을 지나던 비행기에 놀라 도망간 덕에 극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함께 납치된 여동생과는 생이별한 채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가족들은 다시 ‘보코하람 매춘부’라며 그를 쫓아냈다. 몸 하나 누일 곳 없이 떠돌던 그를 받아준 안식처는 유엔인구기금(UNFPA)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는 지역 여성 상담 캠프. “음식은 제공할 수 없지만 신생아 검진과 상담, 가족 계획은 가능하다”는 상담원의 일상적인 안내에도 메나쉬는 “내게 이렇게 따뜻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며 갓난 아들과 캠프에 머물기로 결정했다.
이 캠프를 비롯해 국제 구호기구가 지원하는 아프리카 내 수많은 여성 쉼터ㆍ의료시설은 지금까지 메나쉬와 같은 성폭력 또는 피랍 여성들을 위한 최후의 안전망 역할을 해왔다. 이들은 나이지리아, 케냐 등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30여개국뿐 아니라 중동, 아시아 등 보건 수준이 열악한 지역에서 여성들에게 막대한 도움을 주고 있다. 하지만 이르면 올해 말부터 전 세계 메나쉬들을 받아줄 시설은 대폭 줄어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낙태 상담을 제공하는‘ 해외 의료단체에 대한 자금줄을 끊으면서다. 올해 1월 일명 세계 낙태 함구령으로 불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발동한 행정명령으로 60여개국으로 향하는 원조 자금 88억달러(약9조8,860억원)가량이 사라질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피해 여성들을 위한 대책은 전무한 상황이라고 1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이 보도했다.
실제 미국 정부가 지구촌 구호 전선에 미치는 영향은 상상을 초월한다. 지난 3년 간 매해 의료 구호 자금 약 100억달러가 미국으로부터 나왔다. 그리고 세계 60개국에 흩어진 보건시설은 이 예산으로 분쟁과 빈곤에 시달리는 여성들에게 출산 전후 건강관리, 트라우마 해소 상담, 자립 활동 지원 등을 제공해 왔다. 유엔인구기금 요르단 암만 지부의 파티마 칸은 “미 정부 지원금의 최고 장점은 특정 목적으로 배정되지 않아 일선에서 가장 시급한 사업에 투자될 수 있었다는 것”이라고 극찬했지만 이내 “당장 요르단 19개 쉼터의 존치 여부를 고민해야 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내년이면 미국 발 기금은 25% 이상 줄어들 예정이다.
지원 중단 이후의 피해는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예산이 크게 줄어든 국제가족계획연맹(IPPF)은 “2020년까지 1억달러 정도를 포기해야 하는데 이 예산이면 임산부 2만명 사망을 막을 수 있다”고 성토했다. 국제 가족계획 단체 마리스톱스인터내셔널(MSI)도 “상담 창구가 줄면서 의도치 않은 임신은 650만건, 음지에서 이뤄지는 낙태 시술도 200만건 이상 늘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