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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칼럼] 교감 아닌 학대의 온상이 된 체험 동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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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칼럼] 교감 아닌 학대의 온상이 된 체험 동물원

입력
2017.08.02 18:18
수정
2018.09.11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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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많은 사람들이 골든 리트리버를 만지기 위해 모여들었다. 개, 특히 대형견은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무는 행동을 보일 경우 사고의 위험이 있어 주의해야 한다.
수 많은 사람들이 골든 리트리버를 만지기 위해 모여들었다. 개, 특히 대형견은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무는 행동을 보일 경우 사고의 위험이 있어 주의해야 한다.

본격적인 휴가철인데다 비가 이어지는 날씨 때문인지, 지난달 31일 방문한 서울시 송파구의 한 실내 체험동물원은 어린이들을 동반한 가족단위 관람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이 체험동물원은 홈페이지를 통해 ‘단순한 동물원이 아니라, 사람과 동물 사이의 창살을 걷어내 희귀동물과 직접 교감하는 곳’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건물 2층과 3층, 두 층에서 멸종위기종 동물을 비롯한 동물 50여 종을 사육하고 있었다. 일반 동물원에서 파충류 등 일부 종을 제외한 동물들이 야외 방사장에서 사육되는 것과는 달리, 도심 속의 체험동물원은 대부분 실내에서 운영된다.

물웅덩이 대신 고무대야, 자연환경과 차단된 ‘인공적 동물원’

동물원은 다양한 생태적 습성을 지닌 야생동물들을 한 곳에 모아놓고 전시한다. 그러다 보니 습성에 맞는 사육환경을 제공하기 어렵다. 동물원 동물이 복지를 보장받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특히 건물 한두 층을 사용하는 실내동물원에서는 서식지와 유사한 환경을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협소한 사육장 안에는 흙과 모래 대신 황토색 콘크리트 바닥이 깔려 있었다. 땅을 파는 습성이 있는 미어캣은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을 계속해서 긁는 행동을 보였다. 가장 큰 설치류 동물인 카피바라는 물에서 헤엄을 치는 습성이 있지만 사육장 안에는 빨래용 고무대야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태양열과 유사한 전등을 사용한다’고 안내문을 붙여 놓았지만 자연채광과 신선한 공기를 느낄 수 없는 인공적인 시설에서 야생동물이 정상적인 행동을 표출하기는 어렵다.

‘창살을 걷어 냈다’는 업체의 표현에 걸맞게, 동물은 관람객의 눈과 손길을 피할 곳이 없었다. 일반 동물원에서는 방사장과 관람객 사이에 해자나 풀숲으로 공간을 형성하거나, 펜스로 방사장과 거리를 두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공간에 제약을 받는 실내동물원의 사육장은 보통 안이 훤히 보이는 유리벽으로 되어 있다. 벽마다 얼굴을 바짝 대고 손으로 두들겨대는 어린이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지만, 관람객의 눈을 피해 몸을 숨길 은신처를 조성한 사육장은 찾아볼 수 없었다. 쇼윈도에 진열된 물건이나 다를 바 없이 전시되는 환경에서 가장 어두운 곳에 숨어 움직임을 보이지 않거나 심한 정형행동을 보이는 동물들도 눈에 띄었다. 미어캣은 유리벽 앞을 쉬지 않고 왔다 갔다 했고, 코아티는 작은 동그라미를 그리며 같은 자리를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어린이들이 블랙 스파니 테일 이구아나를 만지고 있다. 사육사는 ‘사이테스종이 아니라 신고할 필요가 없어 애완용으로 기르기 좋다’고 설명했다.
어린이들이 블랙 스파니 테일 이구아나를 만지고 있다. 사육사는 ‘사이테스종이 아니라 신고할 필요가 없어 애완용으로 기르기 좋다’고 설명했다.

꼬리 잡아당기고 눈 찌르고... 동물에겐 교감 아닌 ‘수난’

무엇보다도 큰 문제는 30분 간격으로 열리는 체험 프로그램이었다. 이구아나, 페럿, 알다브라 코끼리 거북, 코아티, 심지어 골든 리트리버까지 다양한 동물이 사용되고 있었다. 동물에 대한 설명은 채 5분도 걸리지 않았지만 관람객이 한 명씩 직접 동물을 만지고 함께 사진을 찍는 순서는 운영시간인 30분을 훌쩍 넘기기 일쑤였다. 설명 시간 동안 사육사의 손에 들려 젖은 빨래처럼 축 처진 채로 아이들에게 내밀어지던 페럿은 곧 반려견용 침대에 몸을 눕힌 채 자신을 ‘체험하려는’ 손님들을 받아야 했다. 얼굴과 꼬리를 만지면 안 된다는 사육사의 설명이 무색할 정도로 어린이들이 동물의 꼬리를 잡아당기고 눈을 찌르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었다. 함께 온 부모들은 아이가 동물을 만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 바빴는데, 과도하게 터지는 플래시 세례는 동물에게 스트레스를 주기에 충분했다.

동물을 직접 만지고, 먹이를 주고, 심지어 사육장에 들어가게 하는 시설이었지만 동물을 만지고 손을 씻으라는 안내는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동물이 있는 공간에서 음료수를 마시고 음식을 먹는 관람객도 많았다. 지난달 미국 미네소타주에서는 체험농장에 다녀온 어린이가 이콜라이(E ColiㆍSTEC)에 감염돼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특히 대부분의 파충류는 살모넬라균을 갖고 있어 면역력이 약한 어린이가 감염되었을 경우 두통, 복통, 설사 등의 증상을 일으키거나, 심한 경우 내장기관에 확산해 사망의 원인이 될 수도 있어 위험하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의하면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소형 거북과 연계된 살모넬라 감염 사례는 202건에 달했는데 그 중 41%가 5세 미만의 아동이었다. CDC는 면역력이 약한 어린이나 노인은 파충류·양서류와의 직접적인 접촉을 피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희귀동물 분양까지, 법적 사각지대에 놓인 체험동물원

안전 문제에 대한 설명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반면 희귀동물이 애완용으로 적합하다는 광고는 여러 차례 들을 수 있었다. 심지어는 멸종위기종으로 사이테스(CITES·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 부속서 2종에 속하는 동물을 기르려면 정부에 신고해야 하는 절차를 설명하면서 ‘그린 이구아나의 경우 부속서 2종에 속하지만 블랙 스파니테일 이구아나는 사이테스 종이 아니라 신고절차를 피할 수 있다’는 등 법망을 피해갈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기도 했다. 해당 업체는 현재 파충류 등 희귀동물을 분양 판매하는 인터넷 카페를 운영 중이다.

동물복지와 관람객의 안전을 위협하고, 심지어는 야생동물을 사육하다가 유기할 경우 생태교란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인데도 이런 동물체험시설은 법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지난 5월부터 ‘동물원 및 수족관의 관리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고 있지만 동물원에서 동물의 생태적 습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제공해야 하는 시설이나 환경에 대한 기준은 전무하다. 그나마 동물원의 기준도 야생동물 포함 10종 50개체 이상으로 규정해 반려동물과 농장동물만 전시하거나 50마리 이하의 동물을 전시하는 시설은 관리가 어렵다. 2014년 ‘야생생물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서 일부 국제적 멸종위기종의 사육시설 면적기준을 정해놓았지만 실내외 시설에 대한 구분이 없고, 면적 외에는 별다른 기준이 없어 재규어 같은 큰 동물을 좁은 실내에서 전시한다 하더라도 규제할 방도가 없다.

사육사가 페럿을 들고 설명하는 장면. 설명 후에는 관람객들이 돌아가며 만지고 사진 찍는 순서로 운영되고 있었다.
사육사가 페럿을 들고 설명하는 장면. 설명 후에는 관람객들이 돌아가며 만지고 사진 찍는 순서로 운영되고 있었다.

만지고, 들어올리고, 올라타고, 셀프카메라를 찍는 체험을 하면서 야생동물을 보호하고 생명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습득한 어린이는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동물과의 교감은 꼭 손으로 직접 만지고 같은 공간에 있어야만 생기는 것이 아니다. 다른 생명체의 고통을 담보로 한 오락은 교감보다는 학대에 가깝다. 휴가를 즐기러 온 사람들 사이에서 정작 휴식이 필요해 보이는 것은 유리장 안에 갇힌 동물들이었다.

이형주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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