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왕정국가 요르단에서 ‘성폭행범 결혼 면책법’이 폐지됐다. ‘성폭행 가해자가 피해자와 결혼하면 죄를 묻지 않는다’는 법인데, 아랍권에서 여성을 억압하는 대표적 악법으로 꼽혀 왔다.
1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요르단 하원은 이날 피해자와 혼인한 성폭행범을 면책하는 형법 308조의 개정과 폐기를 놓고 표결에 부쳐 없애는 쪽으로 안을 통과시켰다. 폐지안은 상원을 거쳐 압둘라 2세 국왕이 서명하면 확정된다.
현재 이슬람권은 물론,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에서도 성폭행 가해 남성이 피해 여성과 결혼할 경우 면죄부를 주는 법이 시행되고 있다. 요르단에서는 성폭행범에게 최대 7년형, 피해자가 15세 미만이면 사형을 선고할 수 있다. 다만 두 사람이 혼인 상태를 3년 이상 유지하면 가해자의 형사소추를 면하게 하는 예외 조항을 둬 국제사회와 인권단체의 거센 비난을 받아 왔다. 2010~2013년 요르단에서 접수된 성폭행 사건 300건 중 절반이 넘는 159명이 이런 허점을 악용해 처벌을 피했다.
이 법은 과거 여성이 순결을 잃는 것을 가족의 명예를 더럽히는 행위로 간주한 중동 부족사회의 악습에서 비롯됐다. 인디펜던트는 “이슬람권에서는 부정을 저지른 여성을 살해하는 ‘명예살인’까지 암암리에 이뤄지고 있어 성폭행 신고를 꺼려 한다”며 실제 피해자 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내다봤다.
앞서 2014년 성폭행범과 결혼을 강요당한 10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계기로 모로코가 해당 법 조항을 삭제했고, 튀니지도 지난주 폐지했다. 레바논 의회 역시 올해 말 법 폐지 여부를 묻는 의회 표결을 앞두고 있는 등 아랍권 여성인권 향상을 위한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국제 여성인권 단체 ‘이퀄리티 나우’의 중동전문가 수아드 아부 다예는 미 일간 뉴욕타임스에 “우리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았다”며 “여전히 차별적인 법이 남아 있는 다른 중동 국가들에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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