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경남 경마장(한국마사회)의 마방(마구간)에서 일했던 14년차 마필관리사 이현준(37)씨는 지난 6개월간 병가를 낸 팀장의 업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일반 말을 경주마로 변화시키기 위해 말을 직접 타던 그는 늘어난 업무에 하루 최대 20시간까지 일했고, 말 상태의 작은 변화에도 마주와 조교사의 질책이 심한 업무 특성상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면서 머리에는 5㎝ 가량의 원형탈모도 생겼다. 퇴근 후 집에서 “힘들다”는 말을 자주 내뱉던 그는 결국 지난 1일 자신의 차량에 번개탄을 피운 채 세상을 등졌다. 지난 5월 같은 부산에서 국내 1호 말 마사지사인 마필관리사 박경근(40)씨가 업무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목숨을 끊은 데 이어 두 달 만이다. 경주마의 조련사인 마필관리사는 기수가 말을 탈 수 있도록 기초 훈련과 함께 마사지, 식사 제공 등 말의 컨디션을 조절하는 업무를 한다. 2일 마사회에 따르면 국내 실외 경마장은 서울ㆍ부산ㆍ제주 등 세 곳이며 마필관리사는 전국에 847명(서울 466명ㆍ부산 275명ㆍ제주 106명)이 있다.
마필관리사의 고용 구조는 지역별로 차이가 있긴 하지만 형태는 ‘하청’에 가깝다. 마사회는 1980년대까지 말과 조교사(관리 총괄), 마필관리사 등을 직접 고용했지만 부정경마 논란이 일면서 1993년 개인마주제로 전환했다. 이에 따라 마주가 자격증을 갖춘 개인사업자인 조교사에게 말 관리를 위탁하면, 조교사는 마사회가 소유한 마방을 임대해 마사회의 경력 조회를 거친 마필관리사를 고용한다. 하지만 경마 관련 시설운영과 마필관리사 고용에 일부 개입하고 있는 마사회가 사실상 ‘원청’이라는 게 노동계 주장이다.
이런 고용 구조에서는 마필관리사가 처우 개선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순위로 매겨지는 무한경쟁 체제에서 실력이 부족한 조교사는 마방 확보가 어려워지면 마필관리사를 해고한다. 임금체계도 들쭉날쭉하다. 마필관리사 임금은 고정적으로 지급되는 기본급과 시간 외 수당에 변동적인 상금(순위, 출전장려금 등)으로 구성된다. 부산의 13년차 마필관리사 A씨는 “수년 전 순위가 좋을 때는 연 5,000만원 가량을 벌었지만 성적이 부진한 최근에는 3,000만원 초반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라며 “이마저도 조교사가 입맛대로 지급할 뿐”이라고 말했다.
업무강도도 상당하다. 마사회는 한 명의 마필관리사에 3~3.1두(頭ㆍ말의 단위)를 권하고 있지만 부산의 경우 마필관리사 당 4~5두를 관리하고 있다. 1일 숨진 이씨의 마방도 마필관리사 한 명 당 4.5두를 관리하고 있었다. 말 관련 사고도 잦아 지난해 기준 마필관리사들의 산재율은 13.98%로 전국 산업 평균(0.52%)의 25배에 달한다.
공공운수노조 측은 마사회 측에 마필관리사 직고용과 함께 임금 체계를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요구하지만 마사회측은 현실적으로 수용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마사회 관계자는 “직고용 시 조교사 측에 마필관리사를 파견해야 하는데 파견법 대상이 아니라 법을 위반하게 된다”며 “마필관리사는 개인사업자 밑에 고용된 형태로 마사회의 간접고용이 아니기 때문에 정부의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과도 무관하다”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마사회 측에 책임을 묻고 진상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정준호 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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