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신청법 물었다가 ‘문제 사원’
단순 업무 주고 “성과 없다”질책 등
언어폭력ㆍ성희롱에 신입사원 신음
대졸 신입 4명 중 1명 1년 내 퇴사
지난해 대기업에 입사한 이모(28)씨는 아직까지도 제대로 된 업무를 하지 못하고 있다. 신입이라는 이유로 기획이라는 본업에는 손도 못 댄 채 창고 정리, 문건 스크랩 등 단순 업무를 반복하고 있다. ‘이러려고 취업을 한 게 아닌데, 내가 그렇게 가치 없는 인간인가’라는 자괴감이 들지만 선배들은 이를 헤아릴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어 보인다. 오히려 팀장은 일주일에 한번씩 불러 업무 실적을 보고하라고 하고는 “아무 일도 안 할 거면 회사를 나가라”고 고함치기 일쑤다. 이씨는 “제대로 업무도 주지 않고서 성과가 없다며 질책하는 걸 보면 의도적인 괴롭힘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한숨을 쉬었다.
어렵게 취업관문을 뚫은 신입 사원들이 언어폭력과 성희롱 등 직장 내 괴롭힘에 신음하고 있다. 업무 범위를 넘어선 지시를 당연하게 여기는 기존 상명하복 문화에, 청년이 ‘을’이 될 수밖에 없는 취업난이 맞물리면서 이런 현상은 더 심각해지는 분위기다.
신입 여사원들은 회사 내 성차별적 문화가 더해진 괴롭힘에 시달린다. 2년 차 직장인 정모(25)씨는 입사 초부터 “안경 대신 렌즈를 끼고 굽 있는 구두를 신어라”거나 “머리에 웨이브도 넣고 화장 좀 해라” 등 핀잔에 시달리고 있다. “민소매나 짧은 치마 착용 금지 등 엄격한 복장 관리 사내 규정까지 있어 대꾸할 마음은 꿈도 못 꾼다”고 털어놨다. ‘조직 내 취약한 위치에 있는 낮은 연차 여성 노동자를 향한 외모 지적 일상화’는 여성단체들이 꾸준히 제기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올해 초 입사한 김모(26)씨는 휴가 때문에 사실상 ‘왕따’가 됐다. 지난달 선배에게 여름휴가 신청방법을 물었다가 “일 배우기도 바쁜데 신입이 무슨 휴가냐”는 대답을 들었다. 이후 “신입이 휴가 갈 생각만 한다”는 소문이 사내에 퍼지면서 졸지에 ‘문제 사원’으로 찍혔다. 신입 사원은 근무일수에 따라 제공되는 연차휴가가 없거나 적어 휴가를 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상당수 회사에서는 연차휴가 소진 없이 갈 수 있는 약정휴가나 특별휴가를 제공하고 있다. 그럼에도 김씨처럼 ‘일이 바쁘다’ 혹은 ‘건방지게 신입이 휴가나 가려 한다’는 이유로 휴가 신청조차 못하는 신입 사원이 다수다. 김씨는 “보장된 휴가를 쓰는 것이 그렇게 잘못인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사내 괴롭힘 탓에 어렵게 얻은 직장을 박차고 나가는 신입 퇴사 행렬도 늘고 있다. 1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지난해 전국 306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2016년 신입사원 채용실태)에 따르면, 대졸 신입 사원이 1년 내 퇴사하는 비율은 2012년 23.6%에서 지난해 27.7%로 급증했다. 네 명 중 한 명은 1년을 못 버틴다는 얘기. 경총은 “조직 및 직무적응 실패(49.1%) 같이 입사 초기 조직 부적응에 대한 불만으로 퇴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송민수 한국노동연구원 전문위원은 “직장 내 괴롭힘은 특히 연령이 낮거나 여성, 비정규직인 경우 더 빈번하다”며 “이들은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보단 속으로만 앓다가 결국 사표를 던지게 된다”고 진단했다. 현재 국회에는 지난해 발의된 직장 내 지위의 우월성을 이용해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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