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은 시대를 앞서 끌고 나가는 멋진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인터넷으로 세계의 핵심 트렌드를 실시간 파악할 수 있게 되면서 그런 이미지의 영향력이 더 강해지고 있다. 그러면서 생기는 문제도 있다. 모델의 건강 문제부터 강력한 이미지가 만들어 내는 잘못된 관념이 통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문제까지.
일부 디자이너가 몸집이 크거나 나이 든 모델을 기용하는 식의 다양성을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은 해외 화제 수준으로 다뤄질 뿐이다. 전반적 경향으로 보자면, 캣워크(패션쇼의 무대) 위는 더 마르고 더 어려 보이는 모델이 주류가 되어 가고 있다. 또 ‘마른 게 섹시하다’ 같은 이미지가 강화되고 있다. 이런 경향이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줄이기 위한 규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경우 모델 중에 거식증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2015년 프랑스 의회는 지나치게 마른 모델을 패션쇼에 세우지 못하게 하는 규정을 통과시켰다. 그런 모델을 세우는 패션 하우스에 벌금을 물리거나 심지어 관계자가 감옥에 갈 수도 있게 했다. 원래는 BMI 체질량지수(키와 몸무게의 비율로 잰 비만도)를 기준으로 일률적으로 규제하려 했지만, 지난 2년의 유예 기간 동안 패션 에이전시와 브랜드가 격렬하게 반대했다. 결국 올해 규정이 시행되면서 의사의 판단에 맡기도록 약간 완화됐다.
영국에서는 광고 자율 심의 기구인 광고표준위원회(ASA)가 패션 광고에 너무 마르거나 너무 어려 보이는 모델들이 등장하는 것을 규제해 왔다. 예컨대 2015년 이브 생 로랑의 여름 광고와 2016년 구찌의 겨울 광고에 과도하게 마르거나 건강하게 보이지 않는 모델이 나온다는 이유로 방영을 금지하거나 경고했다.
올 들어 ASA는 조금 더 나아갔다.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인 새로운 규정에서는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전달하는 모든 광고를 금지한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거나, 이상적인 체형을 강요하는 내용이 규제 대상에 포함됐다. 그런 이미지가 불평등을 고착시키고 소비자ㆍ시청자의 생각과 결정을 왜곡한다는 판단 때문이다.
브랜드와 정부에 의한 규제와 별도로 민간 단체와 소비자가 중심이 되는 운동도 있다. 예를 들어 ‘67% 프로젝트’가 있다. 미국 여성의 67%는 14(한국 사이즈로 L 정도) 사이즈 이상이다. 그런데도 패션과 미디어가 제시하는 이미지에서는 오직 2%만 14 사이즈에 해당하는 것처럼 왜곡하는 사실을 직시하고 불균형을 바로잡자는 움직임이다.
국내에서도 얼마 전 여성환경연대의 조사에서 의류 매장에 갖춰 놓은 옷 사이즈의 선택 폭이 매우 좁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몸보다 옷이 우선이므로 옷을 입으려면 그에 맞게 몸을 고쳐 나가야 한다는 식의 발상은 전후 관계가 잘못됐다.
이보다 먼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이상적인 신체는 어떤 모습인가’라는 것이다. 신체를 단련하고 건강하게 사는 건 좋은 일이지만, 인간은 모두 다르고 개인이 처한 상황과 조건도 모두 다르다. 스스로 만족하며 즐겁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신체 상태를 알아내는 것, 그리고 어떤 옷을 입는 것이 더 좋은 지를 알아내는 건 각자의 몫이다. 각자 그렇게 살면서 남도 그럴 수 있도록 내버려 두면 된다.
‘다양성의 존중’이라는 말 자체가 유행이 돼 그저 손쉽게 써먹기만 하면 그만인 유행어가 되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실제로는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광고에 그럴듯한 이미지로만 등장하는 건 소용이 없을 뿐만 아니라 해롭다.
패션은 자유로움이고 각자가 서로 다르다는 표식이다. 남들과 같은 옷을 두르고 같은 몸매를 만드는 것에서 안정감을 찾으려 하는 건 이상한 일이다. 다양성들이 서로 만나고 자극을 줄 때 패션 세계는 더 넓어진다. 잠재력을 끌어내고 해 보고 싶은 걸 해 보도록 하는 실험 정신과 모험심은 주어진 것들을 받아들이고 극복할 때 만들어진다. 무엇보다 패션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으면서 관습을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고 때로는 변화에 역행하고 있다면, 재미도 없거니와 폼도 너무 안 나는 게 아닐까.
패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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