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지난달 27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 1심 선고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공범이 아니라고 판단, 적잖은 논란과 의문을 부르고 있다. 재판부의 논리 전개가 국민 법 감정과 어긋나는 것은 물론이고 일반적 헌법 해석과도 결이 다르다는 비판이 잇따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는 판결문에서 “대통령은 보수주의를 표방해 당선됐기에 ‘좌파에 대한 지원 축소와 우파에 대한 지원 확대’를 표방한 것 자체가 헌법이나 법령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이런 기조에 따라 정책 입안과 실행을 지시한 것을 두고 범행을 지시하거나 기능적 행위지배 의사를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단순화하면 보수를 표방한 대통령이므로 좌파 배제 국정 기조를 강조하고 그에 따른 정책을 실행해도 무방하다는 것과 다름없다.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대통령이 반대 이념을 가진 사람들을 지원에서 배제한 정책을 편 게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재판부의 판단은 쉬이 납득하기 어렵다.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와 문화창작의 자유를 훼손한 행위가 ‘국정 기조’나 ‘국가 정책’ 범주에 넣어 합리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과거 진보정권에서 좌파 예술인에 지원을 편중한 사례를 들어 어느 정권이나 마찬가지라는 주장도 있지만, 박근혜 정부처럼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배제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르다. 보수ㆍ진보를 막론하고 어떤 정부든 대통령이 문화예술분야에서 특정 이념을 가진 자들을 배제하도록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박 전 대통령이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행위를 보고받고 관련 지시를 내린 것을 재판부가 인정했으면서도 ‘구체적 범행에는 가담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도 논란이다.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지원금’‘종북도서’등을 언급했다 해도 지원배제 행위를 특정해 범행을 이끈 건 아니라는 재판부의 논리는 지나치게 대통령의 권한 범위를 좁게 해석한 것이라는 비판을 부를 만하다. 대통령의 ‘좌파 배제’가 실정법 위배가 아니라고 판단한 결과 이를 수행한 정책 실행 행위만 유죄가 된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도 있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옥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는 국가적 수치다. 앞으로 어떤 정부에서도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려면 헌법적 가치를 더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게 바람직하다. 상급심에서는 문화와 국가 권력의 관계에 대한 보다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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