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택시운전사’는 소시민이 목격한 1980년 5ㆍ18 광주민주화운동을 그린다. 쇼박스 제공

배우 송강호는 거포다. ‘흥행 타석’에서 매번 장타를 날린다. 영화 ‘설국열차’부터 ‘변호인’ ‘관상’ ‘사도’ ‘밀정’까지 최근작 5편이 모두 관객몰이에 성공했다. 올 여름엔 영화 ‘택시운전사’(2일 개봉)를 내놓는다. ‘군함도’와 함께 빅2로 꼽히는 대작이다. 순수 제작비 120억원으로 450만명을 넘겨야 체면이 선다. 영화 ‘의형제’에서 한 차례 호흡을 맞췄던 장훈 감독과 재회했다.

‘택시운전사’는 1980년 5월 광주의 참상을 취재해 세계에 알린 독일 언론인 위르겐 힌츠페터와 그를 태우고 광주로 향한 택시운전사의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영화다. 송강호는 아내와 사별하고 홀로 딸을 키우며 성실히 살아가는 택시운전사 만섭을 연기한다. 네 달치 사글세에 해당하는 택시비를 벌기 위해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와 광주로 내려간 만섭은 광주의 택시운전사 태술(유해진)과 대학생 재식(류준열)에게 도움을 받다가 뜻하지 않게 항쟁의 물결에 휩쓸린다.

아내와 사별하고 홀로 딸을 키우는 만섭은 고액의 택시비를 벌기 위해 광주로 향한다. 쇼박스 제공
외부자는 어떻게 내부자가 됐나

이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 광주를 대하는 태도다.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든 그날의 참상을 배경으로 전시하거나 볼거리로 소비하지 않는다. 실제 힌츠페터가 촬영한 영상이 아닐까 싶을 만큼 영화 속 장면들이 생생하게 다가오는 건, 사실적인 재현보다는 진실을 우직하게 응시하는 태도의 힘 덕분이다. 그래서 무고한 시민들을 향해 총부리를 겨눈 독재권력의 야만에 더더욱 몸서리치게 된다.

영화는 만섭과 힌츠페터 두 외부자를 내세워 광주의 아픔을 인간 보편의 시선에서 들여다본다. 소시민을 대표하는 만섭은 충실한 인솔자다. 그가 외부자에서 내부자로 태도를 바꿀 때 관객도 각성하게 된다. 그러나 이야기의 또 다른 축인 힌츠페터의 시선은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뤄진다. 서울에서 반독재 시위를 일상적으로 겪었을 만섭보다 힌츠페터가 받았을 충격과 공포가 더 클 텐데 그의 심정적 변화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힌츠페터가 목숨 걸고 광주를 취재하고 일본으로 몰래 출국하는 과정도 그 자신이 아닌 만섭의 시선에서 그려진다. 상상만으로도 긴박한 그 여정이 영화에선 의아할 정도로 밋밋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송강호의 호연이 없었더라면 영화가 조금 심심할 뻔했다.

김표향 기자

광주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힌츠페터는 목숨 걸고 광주에 잠입해 그곳의 참상을 카메라에 담는다. 쇼박스 제공
젊은 세대가 봐야 할 역사 참고서

현대사를 다룬 영화들은 대체로 투박하다. 역사적 사실 앞에서 격한 감정을 종종 드러낸다. 그날 그곳에서 벌어졌던 일을 지금 이곳으로 강렬하게 전달해야 한다는 강박에 짓눌리는 경우가 많다. 37년 전 비극을 소재로 품은 ‘택시운전사’는 의도적인 거리 두기로 격정을 자제한다. 거친 감정을 폭발시키기 보다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정치에 무지했던 만섭이 비극의 현장에 우연하게 서서 사회 현실을 깨닫는 과정을 보며 관객은 역사를 간접 체험한다.

‘택시운전사’의 접근법에 좋고 싫음이 갈릴 수 있다. 감정과잉이라 하더라도 그날의 분노와 슬픔을 오롯이 느끼고 싶은 관객이라면 실망하기 십상이다. 5ㆍ18을 교과서 몇 줄 서술로만 알고 있는 젊은 세대에게는 제법 괜찮은 역사 참고서다.

공들이지 않은 듯 공들인 인상적인 장면이 여럿이다. 힌츠페터를 태운 만섭이 학살의 현장을 택시 룸 미러로 보며 출발을 주저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메시지를 함축한다. 과거에 함몰되지 말고 미래로 나아가라는, 지난날을 종종 돌아보며 앞으로 전진하는 게 역사를 대하는 올바른 자세라고 웅변하는 듯한 장면이다.

계엄군을 피해 힌츠페터와 도망친 만섭이 넋두리하듯 자신의 아픈 과거를 토해내는 모습에선 송강호라는 배우의 존재감을 새삼 절감하게 된다. ‘연기 괴물’이라는 수식은 이번에도 적절하다.

라제기 기자

‘택시운전사’는 독일 언론인 위르겐 힌츠페터의 실제 경험에 픽션을 녹여 영화적 재미를 추구했다. 쇼박스 제공
‘이거 실화냐?’ 공감 안 되는 소시민의 용기

추리물도 아닌데 계속 의심하게 만든다. 의심의 질이 문제다. 깨달음을 위한 미끼가 아닌 ‘말도 안 돼’라는 불신의 체증이 영화의 몰입을 막는다. 홀로 딸을 키워야 하는 만섭은 어떻게 핸들을 돌려 다시 ‘피바다’인 광주로 향했을까. 대학가요제에 참여하고 싶어 대학에 진학했다는 재식은 어떻게 머리에 총구가 겨눠진 상태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은 의인이 됐을까. 감독은 이해할 만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 영화의 줄기는 권력의 광기에 맞선 소시민의 용기다. 소시민이 어떻게 역사의 한 조각이 됐는지를 설득하지 못한 순간 관객은 영화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후반부엔 결국 ‘광탈’하게 만든다. 만섭의 탈출을 위해 몸을 던진 택시 운전사들의 질주로 ‘이야기의 산사태’를 맞는다.

캐릭터의 역사를 단단하게 쌓아야 했다. 캐릭터들이 단편적이라 5ㆍ18이 지닌 역사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다. 비극적 현실에 배역들이 지닌 낭만이 물과 기름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택시운전사’는 외부인(독일 기자)의 시선에서 시작했다. 그의 얘기가 영화에 제대로 녹아 들었다면 이야기가 입체적이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

영화의 미덕을 찾자면, 송강호의 존재감이다. 어쩜 저렇게 자연스러울 수 있을까. 새삼 놀랍다.

양승준 기자

‘택시운전사’의 두 주연배우 토마스 크레취만(왼쪽)과 송강호. 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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