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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록스타 알반 "평양 영상 찍어 뮤비에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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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록스타 알반 "평양 영상 찍어 뮤비에 활용"

입력
2017.08.0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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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고릴라즈 멤버인 데이먼 알반은 북한으로 여행을 간 이유에 대해 "다양하게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지산 밸리록 뮤직 아츠 페스티벌 제공
밴드 고릴라즈 멤버인 데이먼 알반은 북한으로 여행을 간 이유에 대해 "다양하게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지산 밸리록 뮤직 아츠 페스티벌 제공

영국 밴드 고릴라즈의 신곡 ‘슬리핑 파우더’의 뮤직비디오에는 북한의 풍경이 나온다. 평양 거리에 한글 간판이 달린 식료품 가게부터 조선인민공화국이라는 문구 아래 무용수들이 단체로 부채춤을 추는 모습 등이 담겼다. 해외 음악인의 뮤직비디오에 북한 관련 영상이 주요 소재로 쓰이기는 이례적이다. 지난달 30일 경기 이천에서 열린 지산 밸리록 뮤직 아츠 페스티벌에서 만난 고릴라즈 멤버 데이먼 알반(49)은 “평양에 갔을 때 직접 찍은 영상을 뮤직비디오에 활용했다”고 말했다.

밴드 고릴라즈 신곡 '슬리핑 파우더' 뮤직비디오 한 장면. 북한 무용수들이 부채춤을 단체로 추는 장면이 실렸다. 뮤직비디오 캡처
밴드 고릴라즈 신곡 '슬리핑 파우더' 뮤직비디오 한 장면. 북한 무용수들이 부채춤을 단체로 추는 장면이 실렸다. 뮤직비디오 캡처

알반은 2013년 평양을 방문한 적 있다. 1주일 동안 머물며 평양 제1고등학교와 전쟁 박물관 등을 둘러봤다. 알반이 영국 잡지 GQ와 한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북한 노래방에도 갔다. 영국 유명 펑크 밴드인 섹스피스톨스의 히트곡 ‘아나키 인 더 유케이’를 부르는 사람도 봤다는 후문이다. 알반의 말이 사실이라면 북한에서 무정부주의를 부르짖은 이들의 노래가 소개됐다는 점이 놀랍다.

‘슬리핑 파우더’의 뮤직비디오는 고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떠올리게 한다. 앨리스가 토끼굴에 빠져 다른 세계를 경험하듯, 밴드 멤버의 만화 캐릭터인 2D(알반)는 북한으로 가 새로운 세상을 엿본다. 마치 무엇인가에 홀린 듯 등장인물은 흐느적거리고, 영상은 불투명하다. 알반은 “마법에 걸린 느낌을 주고 싶었다”라고 했다. 그는 북한을 ‘마법의 왕국(Magical kingdom)’이라고 표현했다. 북한 사람들은 주문에 걸려 있는 듯했다고 봤다. 동상이 여러 곳에서 세워져 가는 곳마다 김정은 일가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환경에 살아서다.

밴드 고릴라즈가 새 앨범 '휴먼즈' 발매에 앞서 지난해 공개한 콘셉트 사진. 북한을 소재로 했다. 고릴라즈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밴드 고릴라즈가 새 앨범 '휴먼즈' 발매에 앞서 지난해 공개한 콘셉트 사진. 북한을 소재로 했다. 고릴라즈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북한에서의 기이한 경험은 알반의 창작에 밑거름이 됐다. 그는 지난 4월 고릴라즈 새 앨범 ‘휴먼즈’ 발매에 앞서 북한을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 콘셉트 사진을 먼저 공개해 팬들의 호기심을 샀다. 알반은 또 다른 록밴드 블러의 보컬이자 리더로서 2015년엔 ‘평양’이란 곡을 내기도 했다.

알반은 기사로 우연히 접한 뒤 북한에 관심을 두게 됐다. 자연스럽게 북한이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외국인에게 북한 여행은 살얼음판을 걷는 일과도 같다.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는 북한에 17개월 동안 억류됐다가 지난 6월 의식불명 상태로 풀려난 지 얼마 안 돼 숨져 충격을 줬다. 알반도 웜비어의 사망 소식을 알고 있었다. 북한 체류 시 위협은 없었냐는 질문에 알반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갑자기 두려워진 걸까. 그는 영상 촬영도 허가된 곳에서만 찍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1990~2000년대 브릿팝 열풍을 주도한 록스타의 장난기를 발휘하기도 했다. 그는 북한 여행을 얘기하는 도중 공포에 질린 듯 양 손에 힘을 꽉 주고 얼굴을 떠는 표정을 해 인터뷰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지난달 30일 경기 이천에서 열린 지산 밸리록 뮤직 아츠 페스티벌에서 밴드 고릴라즈의 공연 모습. 지산 밸리록 뮤직 아츠 페스티벌
지난달 30일 경기 이천에서 열린 지산 밸리록 뮤직 아츠 페스티벌에서 밴드 고릴라즈의 공연 모습. 지산 밸리록 뮤직 아츠 페스티벌

알반의 내한은 20년 만이다. 1997년 블러로 내한 공연을 연 뒤 처음이다. 알반은 이날 페스티벌 메인 무대에 헤드라이너(간판출연자)로 나와 록과 힙합, 전자음악을 버무린 노래들과 애니메이션을 결합한 공연으로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고릴라즈는 알반이 만화가 제이미 휴렛과 만든 가상 밴드다. 1998년 1집 ‘고스트 트레인’으로 데뷔했고, 네 만화 캐릭터를 내세워 음악을 표현하는 게 특징이다. 음악은 실존하는 데 정작 가수의 실체는 없어 음악과 가상현실이란 철학적 화두를 던지는 팀이기도 하다. 발표하지 않은 곡이 무려 40여 개나 된다는 알반은 “매주 곡을 쓰고 있다”라고 했다. 그는 고릴라즈의 향후 활동에 대해선 “관습적인 기존 밴드와 달라 새로운 이야기가 생기면 돌아올 것”이라고 밝혔다.

알반은 “북한을 비롯해 페루 등 여러 나라를 여행한 것”을 창작의 원동력으로 꼽았다. 태권도 유단자로 첫 내한 때 태권도장을 찾은 알반은 이번엔 서울 강남구 봉은사를 찾아 불교 문화를 맛 봤다. 종로 풍물시장에 가 티베트의 고승이 쓸 법한 모자를 사기도 했다. 삼계탕에 빠진 그는 홍삼을 사 들고 31일 출국했다. 휴렛은 건강 문제로 이번에 한국에 오지 못했다.

“조카가 K팝을 무척 좋아해서 한국말도 해요. 이달 한국으로 영어 가르치러 온다네요. 그래서 저도 조카 보러 다시 한국에 놀러 오게 될 지 모르겠어요, 하하하.”

이천=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밴드 고릴라즈가 서울 강남구 봉은사를 찾은 모습을 형상화한 합성사진. 고릴라즈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밴드 고릴라즈가 서울 강남구 봉은사를 찾은 모습을 형상화한 합성사진. 고릴라즈 사회관계망서비스(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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