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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장관 노릇 장난으로 하나?

입력
2017.07.31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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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에 신명을 걸고 실패를 죽음으로써 사죄한 예는 우리나라에도 적지 않다. 어떤 경우든 극단적 선택 자체를 지지할 순 없지만, 공인의 그런 끝맺음엔 자못 장엄한 면이 없지 않다. 구한말 민영환(1861~1905) 선생이 그랬다. 명성황후의 조카이자 고종의 총신으로서, 몰락해 가는 왕조의 불행한 엘리트였다. 내무ㆍ외무ㆍ군부 대신을 역임하면서 개혁에 힘을 쏟았다. 하지만 노력도 헛되이 1905년 일제 강압에 의한 을사조약 체결을 맞게 되자 망국의 책임자임을 자처하면서 스스로 분사(憤死)를 결행하기에 이른다.

▦ 왕조시대 충신의 비장한 결기로만 볼 게 아니다. 선생이 죄를 빈 대상은 단지 왕뿐만 아니었다. 선생은 유서에서 “영환은 한 번 죽음으로 황은에 보답하고, 우리 2,000만 동포에게 사죄하려 하노라”라고 했다. 곧 왕조의 신하였지만, 또한 망국의 공인으로서 끝까지 공중(公衆)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는 결연한 의식을 보여 줬던 것이다. 민주주의의 발전으로 공직에 대한 의식이 오히려 가벼워졌기 때문일까.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사건에 휘말린 전 장관들의 한심한 행태를 보면 옛일이 그저 안쓰러울 뿐이다.

▦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재직 때 부하 직원에게 “장관보다 국민연금이사장이 훨씬 좋은 자리”라는 얘기를 천연스럽게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장관이라는 막중한 공직을 맡았던 건지, 가슴이 막막했다. 대략 난감하기는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에 연루돼 구속됐다가 최근 석방된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도 마찬가지다. 조 전 장관은 재판부가 블랙리스트 집행 혐의에 무죄를 선고하자 “저에 대한 오해를 풀어 주셔서 (재판부에)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여전히 억울하다는 심경을 드러냈다.

▦ 재판부는 조 전 장관이 정무수석과 장관 재직 때 블랙리스트 관련 보고를 받지도 않았고, 집행을 지시하지도 않았다고 봤다. 하지만 ‘범행’에 관한 재판부의 좁은 시각을 인정한다 해도, 조 전 장관이 지금 상황을 ‘오해’의 결과로 보면서 억울해 하는 건 왠지 뻔뻔하게 느껴진다. 그의 주장대로 그동안 블랙리스트를 전혀 몰랐다면 장관 노릇을 ‘허당’으로 한 것밖에 안 된다. 그것만으로도 죄를 빌어야 한다. 알면서 모르는 척했다면 부정을 방조한 죄가 가증스럽다. 책임을 통감하지 못하면 고개라도 숙여야 할 것 아닌가.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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