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장소선 이름 못 부를 정도
남성 중심 사회서 정체성 잃어
온라인 중심 되찾기 운동 확산
“여성인권 향상 첫걸음” 지지도
“내 이름은 아크람이다. 아이 엄마라는 호칭? 공격 받을지언정 이제는 그렇게 불리고 싶지 않다.”
여성 인권이 취약한 아프가니스탄에서 온라인을 중심으로 여성들의 이름 찾기 운동이 번지고 있다. 3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은 “최근 몇 주간 젊은 여성들의 주도로 ‘내 이름은 어디에(Where Is My Name)’라고 명명한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여성들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회복하기 위해 시작된 이 운동은 아프간의 유명 가수 파하드 다리아가 지지하면서 또 한 번 이목을 끌었다. 다리아는 페이스북에서 “나의 어머니, 여동생, 아내의 이름은 희생돼 왔다. 이 운동은 그들에 대한 존경을 표현하는 상징과도 같은 것”이라고 썼다.
아프간에선 공공장소에서 여성의 이름을 부르는 일이 금기이다. 따라서 남성들은 여성의 이름을 입 밖으로 내뱉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고, 현재까지 이름 대신 어머니, 아내 등으로만 부르고 있다. 아프간 사회학자 하산 리자에는 “부족 방식의 삶에서 근거를 찾자면, 여성의 몸은 남성 소유이고, 그런 관점에서 다른 남성들은 그 여성에게 눈길을 주거나 손을 댈 수 없으며 이름조차 부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로 아프간에서는 청첩장에도, 처방전에도, 심지어 부고에도 여성의 이름을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라는 ‘이름’이 적힌다. 여성운동가인 바하르 소하일리는 “저항하지 않고 침묵하는 여성이 많은 게 현실”이라며 “이 운동은 왜 여성들의 정체성이 부정되는지 묻는 질문에서 시작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활동가인 라레 오스마니는 “우리는 여성이 독립 개체로 인식되기를 바란다. 그들의 이름과 정체성을 되찾기 위해 싸워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이 운동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목소리도 나온다. 눈에 보이는 변화를 이끌어내기엔 너무 미약하다는 평가다. 아프간의 한 페이스북 이용자는 “이름이 불렸을 때 아프간 여성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이게 아프간 여성들의 주요한 걱정거리가 맞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반면 이 운동의 지지자인 카이제 나비야는 “확고한 정체성 없이는 여성들이 자신의 권리를 방어할 수가 없다”라며 이 운동이 아프간 여성 인권 향상의 첫걸음이 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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