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체기록 삭제하고 빚 부활 막아
관행적 연장 따른 채무자 피해 차단
민간 금융사도 적극 소각 유도
장기연체자 빚 탕감은 내달 발표
정부가 장기연체자의 빚 완전 탕감 정책에 앞서 공공과 민간이 보유한 214만여명의 소멸시효 완성채권 소각을 추진하기로 한 것은 장기연체자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기 위해서다. 법적으론 연체 후 5년만 지나면 소멸시효가 완성된다. 이 기간이 지나면 채무자는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실제로 연체 5년 만에 소멸시효가 완성되는 경우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그 동안 대부분의 금융사들은 빚 받기를 포기할 경우 배임에 걸릴 걸 우려해 일단 법원에 지급명령을 신청하는 식으로 시효를 관행적으로 10년씩 연장해 왔다. 때문에 실제로는 대략 연체기간이 15년은 넘어야 금융사들이 시효 연장을 포기하곤 했다.
더구나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해도 제도적으로 빚을 다시 부활시킬 수 있었다. 금융회사가 시효가 지난 채권을 채권추심업체에 팔 경우 추심업체는 법원의 전자소송시스템을 이용해 지급명령을 신청할 수 있다. 이 때 법원은 시효의 완성 여부를 따지지 않고 지급명령 결정을 내린다. 채무자가 2주 안에 법원에 이의신청을 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시효는 10년 연장된다. 장기연체자 대부분은 이 같은 내용을 몰라 이의신청을 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소멸시효 완성채권이 소각되면 이 같은 채무자의 피해 가능성도 원천 차단될 것으로 보인다. 채권 소각은 갚아야 할 빚을 탕감해주는 게 아니라 전산에 남아 있는 연체기록을 완전히 지워주는 것이지만 이 기록이 사라지면 빚 부활은 불가능해진다. 채무자로선 추심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고, 금융거래도 가능해진다. 지금은 연체 후 12년이 지나면 전 금융권에 공유되는 신용정보원에 저장되는 연체기록이 지워진다. 그러나 돈을 빌린 금융사엔 연체기록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정부가 소각을 결정한 소멸시효 완성채권의 경우 연체기간이 평균 15년 이상 된 장기연체자들로 상환 능력이 없는 극빈층이 대부분이다. 이미 못 받을 돈인 데다 수혜대상이 극빈층인 만큼 도덕적 해이 우려는 낮다고 금융위는 설명했다. 정부 주도의 시효 완성채권 소각 조치는 이번이 처음이다.
관건은 시중은행과 보험사를 비롯한 민간 금융사(대부업체 제외)들이다. 정부는 이들이 갖고 있는 91만2,000명(4조원)의 소멸시효 완성채권도 소각을 유도하기로 했다. 하주식 금융위 서민금융과장은 “소멸시효 완성채권을 추심업체에 되파는 걸 금지하는 방안도 추진할 예정이어서 시효 완성채권 소각은 계속 이뤄질 것”이라며 “이번엔 빠졌지만 차후엔 대부업체들도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와 별개로 내달 연체기간 10년 이상, 빚 원리금 1,000만원 이하인 장기연체자(시효 완성 전)를 대상으로 빚을 완전 탕감해주는 대책을 발표한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