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美 외교관 755명 줄여라” 육성 통보
트럼프 정부 하에서도 관계 개선 어렵다 판단
NYT “냉전 종식 후 가장 심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등장으로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 개선을 노렸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기대를 내려놓은 것일까. 푸틴 대통령이 미국 의회의 대대적인 추가 제재에 대응해 러시아에 주재하는 미국 외교관 755명을 줄여야 한다고 직접 통보했다. 지난 독일 함부르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처음 얼굴을 맞댄 두 정상이 관계 정상화를 추구했던 분위기는 차갑게 식은 듯하다. 뉴욕타임스(NYT)는 푸틴 대통령의 강력한 외교적 반발에 “냉전 종식 이후 가장 심각한 대응이다”고 평가했다.
러시아 국영 타스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간) “러시아에서 활동하는 미국 외교관 및 직원 중 755명이 러시아 내 활동을 그만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이틀 전 러시아 외교부 성명을 재확인한 것이다. 755명에는 미국에서 파견된 외교관뿐 아니라 현지에서 고용된 기술직도 포함된다.
러시아 외교부는 이와 같은 요구를 하면서 미국 내에서 활동하는 러시아 외교관 및 직원이 455명인데 반해 러시아 내 미국 외교공관 직원은 1,200명에 이른다며 수를 맞춰야 한다는 구실을 댔다. 또 세르게이 랴브코프 외교차관은 미국 ABC방송에 출연해 “미국의 제재와 같은 수준의 보복제재가 뒤따를 것”이라며 추가 조치를 예고했다.
미국 언론은 푸틴 대통령이 미국과의 정면대결에 나선 것이 트럼프 정부 하에서도 미국과 관계개선이 어려워졌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 개인은 7월 7일 G20회의에서 푸틴 대통령과 긴밀히 대화하는 등 관계개선 의지를 보였지만 미국 상ㆍ하원이 러시아ㆍ이란ㆍ북한에 대한 제재를 패키지 형식으로 통과시키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기 어렵게 손발을 묶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미국 내에서 러시아의 지난해 미국 대선 개입 의혹 조사가 진행 중인 이상 트럼프 정부가 러시아에 접근하는 것 자체만으로 정치적인 부담이 크다.
여기에 미국의 주간지 디애틀랜틱은 트럼프 대통령 자신도 ‘오락가락’ 외교 노선을 타면서 러시아에 확신을 심어주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지난 4월 러시아가 지지하는 시리아 정권이 반군 점령지의 민간인에게 화학공격을 하자 즉각 보복 공격을 가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트럼프 정권 내에서 ‘러시아 매파’가 득세하는 조짐도 보인다. 우크라이나 특사로 파견된 폴 볼커는 “휴전 유지를 위해서”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친러시아 반군에 맞서 우크라이나 정부군에게 무기를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30일 에스토니아ㆍ조지아ㆍ몬테네그로 등 동유럽 순방에 나선 것도 러시아 견제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동맹 지지 표명 성격이 강하다. 이에 대해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링궁 대변인도 31일 “미국이 ‘정치적 정신분열’을 극복하는데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라고 언급했다.
당분간 대립 국면은 지속될 것으로 보이지만 양국이 관계 개선을 아예 포기한 것은 아니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게 유감인 부분이지, 우리는 여전히 양국간의 관계 발전에 관심이 있다”라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트럼프 정권 내 고위 관계자도 NYT에 “백악관은 아직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한편 전직 중앙정보국(CIA) 직원인 외교전문가 롤프 모왓-라슨은 NYT에 “푸틴 대통령도 이런 상황이 되기는 원치 않았겠지만 이번에는 고전적 맞보복 전법밖에 답이 없었을 것”이라며 “신(新)냉전 구도가 한동안 지속된 상황에서 양국 관계가 단번에 개선되긴 어렵다”고 평가했다.
인현우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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