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40)씨는 2002년 사업이 망해 시중은행에서 빌린 대출금을 갚지 못했다. 연체한 지 15년이 된 올해 빚의 소멸 시효가 완성된 걸 알고 다시 은행을 찾아 통장을 만들려고 했지만 곧 바로 거절당했다. 시효 완성으로 빚을 갚을 의무는 사라졌지만 연체 기록이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김씨 같은 214만명의 장기 연체자도 다시 새 삶을 살 수 있도록 채권 소멸 시효(평균 15년)가 지난 연체 기록을 지워주기로 했다. 전산에 남아 있는 ‘연체 주홍글씨’가 완전히 사라지면 이들은 더 이상 빚 독촉에 시달리지 않고 체크카드 발급 같은 금융거래 등도 정상적으로 할 수 있게 된다.
금융위원회는 31일 문재인 대통령의 ‘소멸시효 완성채권 소각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 이 같은 내용의 대책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소각 작업은 8월말까지 마무리될 전망이다. 정부의 이번 조치는 전산에 남아 있는 연체기록을 없애주는 것이다. 정부는 이와는 별도로 연체기간 10년 이상, 빚 원리금 1,000만원 이하인 장기연체자를 대상으로 빚을 완전히 탕감해주는 정책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소멸시효 완성채권이란 금융회사가 빚을 돌려받으려는 법적 조치 등을 취하지 않아 채무자가 법적으로 빚을 갚지 않아도 되는 채권을 말한다. 보통 연체 후 5년이 지나면 소멸시효가 완성되지만, 금융사는 소멸시효 직전 법원에 지급명령을 신청하는 방식으로 시효를 10년씩 연장해 왔다. 금융사는 통상 연체 후 15년은 지나야 시효 연장을 포기(소멸시효 완성)했다.
하지만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해서 연체자들의 빚 부담이 사라지는 게 아니다. 시효가 완성돼도 금융회사가 법원에 지급명령을 신청하는 방식을 이용하면 얼마든지 채무를 부활시킬 수 있었다. 또 전 금융권에 공유되는 연체기록은 사라져도 빚을 진 해당 금융사엔 연체기록이 남아 금융거래 시 제한을 받았다. 이에 따라 금융위는 우선 국민행복기금과 금융공공기관이 보유 중인 123만1,000명(21조7,000억원)의 소멸시효 완성채권을 일괄 소각하기로 했다. 이어 대부업체를 제외한 민간 금융사들이 갖고 있는 91만2,000명(4조원)의 소멸시효 완성채권도 민간 금융사 스스로 소각하도록 유도하기로 했다. 이 작업이 마무리되면 214만3,000명은 연체 빨간딱지를 완전히 떼게 된다.
정부는 또 소멸시효가 지난 완성채권의 경우 금융사가 추심 업체에 헐값에 파는 것을 원천 금지하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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