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죽사남’방송 중단 요구
“한국 사랑해…분쟁 번질 우려 커”
MBC, 문제 부분 다시보기서 삭제
“혹시나 이 드라마를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본다면, 한국도 테러에서 안전할 수 없을 겁니다. 한국을 좋아하기 때문에 경고하려고 온 거예요.”
30일 늦은 오후 이집트인 페토 개드(28)씨가 친구 두 명과 함께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 건물 앞에 섰다. 드라마 ‘죽어야 사는 남자’ 방송 중단을 요구하기 위해서다. 당초 이날 집회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무슬림 50여명이 참가 의사를 밝혔지만 실제로 집회 시간(오후 4시)에 맞춰 현장에 나온 사람은 세 명이었다. 개드씨는 “드라마가 이슬람 문화를 심각하게 왜곡해 한국이 위험에 처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라면서 “MBC가 책임 지고 당장 드라마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죽어야 사는 남자’는 19일 방송 직후부터 이슬람 문화 왜곡이라는 구설에 올랐다. 배우 최민수가 맡은 주인공은 가상의 아랍 국가에서 백작이 된 인물인데, 그가 하는 말과 행동이 무슬림을 우스꽝스럽게 그리고 있다는 게 논란과 비판의 요지다. MBC는 ‘이슬람 비하’ 논란이 나오자 첫 방송 이틀 만인 21일 홈페이지에 한국어, 영어, 아랍어로 된 사과문을 게재했지만, 개드씨는 “사과문 한 장으로는 부족할 만큼 심각한 문제”라며 강경 입장을 보였다.
개드씨를 포함한 무슬림들은 ▦히잡을 쓴 여성들이 신체가 다 노출되는 비키니를 입고 있는 장면 ▦기도를 하다가 ‘신의 계시를 받아’ 클럽에 가는 장면 ▦신성한 경전인 쿠란 옆에 발을 올려 놓는 등 함부로 대하는 포스터 장면 ▦출처 불명 아랍어 발음과 철자 표기 등을 이 드라마의 심각한 오류로 지적한다. 이날 개드씨와 함께한 모하메드 압델라림(28)씨는 “방송사가 드라마를 만들면서 종교에 대한 기본적인 고증도 하지 않을 만큼 이슬람 문화에 무신경하다는 게 문제”라며 “단순한 재미 소재로 사용하려다 보니 이렇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한희 MBC 드라마 국장은 이날 기자들을 만나 “희화화 의도는 전혀 없었다”며 “더 알아보고 신중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분들께 사과했다”고 말했다. “지적 받은 부분은 ‘다시 보기’ 서비스에서 삭제하고, 앞으로 나올 장면에서도 모두 빼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개드씨 일행은 경찰과 MBC 관계자의 설득을 받아들여 방송 내용을 한 주 더 지켜본 뒤 다음 주에 다시 MBC 앞에서 집회를 할지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저와 제 친구들은 한국을 정말 사랑하고,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가 분쟁으로 번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부디 저희를 오해하고 왜곡하지 말아주세요.”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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