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이후 배치” 발표 15시간 뒤
‘보고 누락’ 사건 발사대
추가 임시 배치로 입장 선회
북한의 미사일 도발 대응책으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발사대 4기의 추가 임시배치 방침이 발표되면서 문재인 정부의 사드 대응 스텝이 꼬이게 생겼다. 사드 부지 환경영향평가 절차를 통해 사드 최종 배치까지 시간을 최대한 벌면서 협상력을 높이려던 정부의 계획은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정부는 사드 발사대 추가 임시배치가 최종 배치 결정은 아니라고 강조했지만 입장 선회를 둘러싼 논란은 커지는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직후인 29일 오전 2시 사드 발사대의 임시 배치로 입장을 선회하면서 그동안 ‘사드는 부지 일반환경영향평가 이후 배치를 결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던 정부 여당으로서는 머쓱한 상황이 됐다. 특히 정부가 28일 오전 10시 30분 연내 완료가 불가능한 사드 부지 일반 환경영향평가 절차를 밟겠다고 발표하며 사드 배치를 내년 이후로 미뤘던 것을 감안하면 15시간 30분 만에 연내 배치 무산에서 조속한 배치로 입장이 바뀐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더군다나 추가 배치되는 발사대 4기는 문 대통령 집권 초 국방부 ‘보고 누락’ 사건의 계기였다는 점에서도 씁쓸함을 남겼다. 청와대는 지난 5월 사드 반입 보고 누락과 관련해 민정수석실 차원에서 박근혜 정부의 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 등을 조사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결과 위승호 전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이 육군 정책연구관으로 좌천되는 등 소동이 일었는데 이번 임시 배치에 따라 청와대 스스로 5월 조치의 모순을 인정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사드 대책 특별위원회까지 꾸려 ‘사드는 북한의 ICBM 대책이 되지 않는다’며 청와대 입장을 거들고 나섰던 집권여당 민주당도 청와대의 사드 배치 입장 번복에 난감한 기색이 역력했다. 게다가 북한의 도발로 사드 배치 찬성 여론은 더욱 힘을 받게 된 반면 환경영향평가 및 국회 비준 동의를 강조하며 사드에 대한 ‘전략적 모호성’ 혹은 부정적 입장이 강했던 정부여당 주장은 명분을 잃게 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30일 “임시로 추가 사드 배치를 진행하고 환경영향평가는 그대로 진행하면서 환경 영향 평가가 끝나는 시점에 다시 한번 배치 여부를 최종 결정할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미국 측 입장을 감안하면 이번에 임시 배치된 사드 발사대를 추후 철수시키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전망이다.
당장 야당에서는 청와대가 스스로 원칙을 깨면서 배치를 서두른 것을 거세게 비판했다. 김유정 국민의당 대변인도 이날 “일반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겠다고 한 말에 잉크도 마르기 전에 사드 발사대를 추가로 임시 배치하라고 지시했다”고 비난했다.
정부는 ‘임시 사드 배치’ 상황을 대중국 압박의 지렛대로 활용하겠다는 복안이지만 효과를 발휘할지도 미지수다. 여권 관계자는 “북한의 군사 도발이 반복되고 있는 만큼 사드가 임시로 배치된 상황을 최대한 끌고 가면서 중국이 북한을 압박할 분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다만 중국이 여전히 사드 배치 중단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만큼 ‘임시 사드 지렛대’가 중국 정부에 얼마만큼 효율적인 압박 수단이 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손효숙 기자 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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