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하늘은 무슨 빛이었길래/ 당신의 바람은 어디로 불었길래/ 당신의 시 들이 이토록 숨을 쉬나요(…)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했던 당신은/ 차라리 아름다운 영혼의 빛깔이어라’
이장희, 송창식과 함께 1970년대를 풍미했던 ‘세시봉 세대’ 가수 윤형주가 쓴 ‘윤동주님께 바치는 노래’의 한 구절이다. 시인 윤동주(1917~1945)는 윤씨의 6촌 형이자 작고한 아버지 윤영춘 경희대 교수의 제자다. 윤형주가 1989년 유족 중 처음으로 중국 옌지의 룽징에 있는 윤동주의 묘소를 직접 방문하고 이 추모곡을 만든 사연은 지난해 영화 ‘동주’가 개봉하면서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나무가 춤을 추면/ 바람이 불고/ 나무가 잠잠하면/ 바람도 잠을 자오’
윤동주 연구 권위자로 꼽히는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는 최근 윤동주의 시 ‘나무’에 직접 곡을 붙여 각종 강연에서 부른다. “20년 전 만해도 윤동주를 ‘과잉 평가된 대상’으로 봤다”는 김 교수는 스승인 오무라 마스오 와세대 대학 교수로부터 자꾸만 윤동주에 관한 자료를 건네 받게 된다.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다시 읽으며 “윤동주가 허상이 아니라 거대한 대상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김 교수는 대중을 대상으로 한 ‘처럼-시로 만나는 윤동주’(문학동네), 전문 연구서 ‘디아스포라 백석과 윤동주’(아카넷·근간)를 썼다.
두 사람이 윤동주를 계기로 한 무대에서 만난다.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맞아 8월 1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열리는 기념 콘서트 ‘동주의 하늘과 별 그리고 노래’에서다. 27일 서울 중구 신당동에서 만난 두 사람은 서로를 “연구자가 가장 조심스러워하는 유족”(김응교), “유족이 가장 신뢰하는 평론가”(윤형주)라고 소개했다. “학자들이 작가 유족을 만날 때 여러모로 어려운데, 윤동주 선생 유족들은 (관련 행사 때) 시인의 마음을 온전히 전하려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특히 조심스럽죠.” 김응교 교수의 소개해 윤형주가 쑥스러운 듯 화답한다. “보통 윤동주를 민족시인, 애국시인이라고 소개하잖아요? 한데 (유족인) 우리가 볼 때는 시의 근간에 기독교 신앙이 깔려 있어요. 김 교수는 시를 문학적인 시각에서도 접근하지만 신학적인 면까지 입체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유족의 입장에서 가장 정확한 해석이라는 생각이 들죠.” 지난 2월 연세대에서 열린 윤동주 72주기 행사에서 윤형주는 김 교수의 특강을 맨 앞줄에서 ‘열공’한 후, 공연 출연을 제안했다.
집안에서 윤동주는 너무 조용해서 ‘어디 있는지 잘 모르는 아이’로 통했다. “학교 다녀와 어른들한테 인사하고는 시집 들고 없어졌대요. 굉장히 내성적이고 유순한데, 누가 자기를 집에 바래다주면 또 다시 바래다줘야 마음이 편할 정도로 배려가 깊었대요.” “가문이 모두 이주해 동족촌을 이뤘던” 북간도에서 윤동주와 친척 이상의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던 윤형주의 아버지는 윤동주 사후 그의 시신을 수습했고, 원고를 모아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출간하기도 했다. “북간도에서 아버지가 중학교 교사를 하셨는데, 반 학생이 조카 윤동주였죠. 교회에서도 교사, 학생 관계였고, 아버지도 시를 쓰셨고요. 시신 수습도 (윤동주의 부친) 윤영석 선생과 같이 했는데, 그때 일만 떠올리면 ‘삼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라고 하셨던 걸 봐서 아마 눈을 못 감고 돌아가신 모양이에요. 크게 소리를 내고 돌아가셨다는 말도 있고요.”
윤동주에 관해 아버지 윤영춘 교수는 두 가지를 당부했다. “시도 노래”이니 윤동주의 시로 노래를 만들지 말고 윤동주 관련 사업에 유족이 직접 나서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번 공연 역시 전문기획사가 제안해 윤형주가 출연한다.
공연은 뮤지컬과 콘서트가 합쳐진 독특한 형식으로 열린다. 공연 1부는 초연 뮤지컬 ‘윤동주를 노래하다’로 꾸며지는데, 김 교수가 ‘나무’와 ‘새로운 길’ 등 윤동주 시에 직접 곡을 붙인 노래들을 부를 예정이다. 윤형주는 추모곡을 비롯해 자신의 히트곡 ‘두 개의 작은 별’ 등을 공연 2부에서 노래한다. “뮤지컬은 1970년대 독재시대 윤형주가 1910년대 일제시대 윤동주를 만나는 이야기에요. 윤형주가 윤동주를 만나듯 관객들이 각자의 윤동주를 체험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김응교)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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