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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비환 칼럼] 응분의 몫, 오디세우스 대 아이아스

입력
2017.07.30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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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분 관념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정의관

민주적 심의 잘 활용하면 공정분배 가능

모든 국민 기초생활ㆍ기본소득 보장해야

권력과 공직, 부와 소득, 지위와 학벌과 같은 사회적 재화들은 개인의 수준이나 분수-신분, 능력, 노력, 공헌 등-에 맞게 배분하는 것이 옳다는 응분 관념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정의관들 중 하나다. <정의론>(1971)의 저자로 유명한 롤스는 사회적 부의 창출과 분배에 작용하는 운의 불공정성을 근거로, 그리고 <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1974)를 쓴 노직은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권리를 행사한 결과 발생한 부의 불평등은 정당하다는 근거로 응분 관념의 타당성을 부정했다. 하지만 대중들은 여전히 각자에게 응분의 몫을 주는 것이 정의의 핵심이라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대중적 인식에 힘입어 사실상 불공정한 분배가 정당화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스의 서사 시인 호메로스는 <일리아스>에서 응분 관념에 얽힌 흥미 있는 일화를 전한다.

기원 전 11세기 경 그리스 연합군이 트로이 정복전쟁을 벌이던 중 영웅 아킬레우스가 전사하자 그의 유품을 누가 차지할 것인가를 두고 오디세우스와 아이아스가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트로이 전쟁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의 유혹에 빠져 남편과 딸을 버리고 트로이로 건너가면서 촉발되었다). 목마 전략을 세워 트로이 함락에 공헌한 오디세우스의 지략과, 수 많은 전투에 참가하여 혁혁한 공을 세운 아이아스의 전투능력 중 어느 것을 더 높이 평가해야 하는가. 양 진영의 입장이 극명히 엇갈리자 공동체는 투표를 통해 오디세우스의 손을 들어준다.

오디세우스는 자신이 세운 공적에 부합하는 보상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아스는 그에 동의할 수 없었다. 오디세우스는 지략에는 뛰어났지만 직접 전투에 임한 경우가 드물었다. 반면에 아이아스는 수 많은 전쟁에 참가하여 승리를 거뒀다. 그는 자신의 전투 능력과 공적이 아킬레우스의 유품을 받기에 더 적합한 근거라 확신했다. 자신의 예상이 빗나가자 아이아스는 격분한 끝에 자결하고 만다.

이 이야기는 응분의 몫을 할당하기 위한 기준을 정하는 문제가 또 다른 시빗거리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각자에게 응분의 몫을 주는 것이 정의라는 주장에는 모두가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오디세우스의 지략과 아이아스의 전투 능력 중 어느 것이 더 적절한 기준인가? 더 비근한 예로, 한 기업이 일정한 수익을 얻는 데 참여한 자본가, 경영자, 사무직노동자, 생산직노동자 중 누가 가장 많은 기여를 했고 누가 가장 적은 기여를 했는가. 이것을 정확히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구나 각 당사자들은 자신의 기여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어서 응분의 몫을 나누는 문제는 항상 큰 논란을 수반한다.

응분 관념은 여전히 강력한 대중적 호소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고도로 분업화된 생산체제에서 각자의 능력이나 공헌을 정확히 측정하기 어려운 기술적인 한계와, 응분의 몫에 대한 요구의 근거가 되는 개인들의 특성_외모, 능력, 재능 등_이 궁극적으로 운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은 공정분배 원칙으로서 응분 관념이 지닌 한계를 드러내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모든 인간이 인격적으로 평등하다는 신념이 보편화된 현대사회에서는 민주적 심의를 잘 활용할 경우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지지할 수 있는 ‘좋은 사회’의 비전 및 그런 사회의 실현에 기여할 수 있는 공정분배 원칙을 합의해갈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따라서 공동체가 민주적 심의를 통해 응분 관념을 공정분배의 한 가지 하위 원칙으로 수용할 경우 응분 관념은 ‘좋은 사회’의 실현과 개인의 자아실현에 동시에 기여할 수도 있다.

현재 한국의 경제수준을 배경으로 과감히 주장해보면, 모든 국민들에게 기초생활이나 기본소득을 보장해주는 정책은 그들의 평등한 인격적 지위에 적합한 ‘기본적인 응분의 몫’을 배분해주는 방법으로 볼 수 있다. ‘기본적인 응분의 몫’이 보장되면, ‘좋은 사회’ 건설에 더 많이 기여하는 개인의 능력과 공헌에 차등적인 응분의 몫을 주는 것도 정당할 것이다.

김비환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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