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1심 선고를 맡은 재판부가 박근혜 전 대통령은 ‘문화ㆍ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의 공범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면서, 박 전 대통령 재판부도 같은 판단을 내릴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재판부는 다음달부터 블랙리스트와 관련한 박 전 대통령 직권남용 혐의에 대한 심리를 본격 착수할 예정이라 검찰과 변호인의 치열한 공방이 예고돼 있다. 김 전 실장과 박 전 대통령의 재판부는 서로 다르다.
28일 법원 등에 따르면 김 전 실장 재판부가 박 전 대통령의 공모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주된 근거는 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 회의 과정에서 ‘지원 배제’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흔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과 김 전 실장 공소장에 따르면 김 전 실장은 2013년 8월 자신이 주재하는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종북세력이 문화계를 15년간 장악했다. 정권 초기에 사정을 서둘러야 한다”며 지원 배제와 관련해 언급했다. 그는 이후 회의에서 “종북 성향 단체들의 정부지원 실태를 전수 조사해 조치를 마련하라” “좌파단체에 대한 지원은 곤란하다” 등의 발언을 이어갔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 지시 사실은 눈에 띄지 않았다. 공소장에는 2013년 9월30일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박 전 대통령이 “국정 지표가 문화 융성인데 좌편향 문화ㆍ예술계에 문제가 많다”고 언급했을 뿐이다. 검찰은 이 발언을 블랙리스트 작성 출발점으로 보고 있지만, 김 전 실장 재판부는 이것만으론 박 전 대통령이 관여했는지 판단할 수 없다고 봤다.
반면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의 사직 강요 혐의와 관련해선 박 전 대통령이 “노태강 국장은 참 나쁜 사람이다. 인사조치하라”고 언급한 부분이 공소장에 명백히 나온다. 재판부도 사직 강요 혐의와 관련해선 박 전 대통령의 공모관계를 인정했다.
하지만 김 전 실장 재판부의 판단만을 근거로 박 전 대통령의 블랙리스트 혐의가 무죄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게 법조계 시각이다.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지원배제를 언급하진 않았지만 검찰 수사결과 2014년 5월 수석비서관들이 작성한 ‘문제 단체 조치내역 및 관리 방안’ 보고서를 김 전 실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으로 파악됐기 때문이다. 또 공소장에는 유진룡 전 문체부 장관이 지원배제 명단과 관련해 2014년 박 전 대통령에게 ‘반대 사람들을 포용하겠다는 약속과 달리 김 전 실장의 지시가 전달돼 문제가 심각하다’고 고언했다는 내용도 나온다.
판사 출신의 법조계 인사는 “박 전 대통령 가담 여부는 향후 법정에서 검찰이 추가로 입증할 것으로 예상돼 김 전 실장 재판부 판단과는 별개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