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계 지원 배제 명단인 이른바 ‘블랙리스트’가 헌법에 위배되는 위법행위라는 법원의 판단이 내려졌다. 서울중앙지법은 27일 이 사건으로 기소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직권남용 혐의를 인정해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블랙리스트 관련 혐의는 무죄, 위증혐의는 유죄로 판단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과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등 4명에게는 각각 징역1년 6월~2년의 실형이 선고됐다. 블랙리스트에 대한 사법부의 1심 판단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모두 마무리된 셈이다.
이 사건 재판의 핵심 쟁점은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정부 지원 배제 조치가 ‘정책적 판단’에 해당하는지, 아니면 사법적 처벌 대상으로 봐야 하는지였다. 김 전 실장 등은 “한정된 국가보조금을 어떤 기준에 따라 나눠 줄지는 정책 기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논리를 펴왔다. 하지만 법원은 블랙리스트가 헌법 정신에 어긋나는 위법행위임을 분명히 선언했다. 재판부는 “지원 배제는 헌법과 문화기본법이 규정하는 ‘문화ㆍ표현 활동이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심각하게 훼손했다”고 질타했다. 재판부는 이어 “무엇보다 법치주의와 국가의 예술지원 공공성에 대한 문화예술계와 국민 신뢰가 훼손됐다”고 지적했다.
법원의 판단은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인들을 탄압하기 위해 작성된 블랙리스트가 실제로 존재하고 집행됐다는 사실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김 전 실장의 지시로 청와대 정무수석실에서 작성해, 교육문화수석실을 거쳐 문체부로 전달됐다는 특검의 수사 결과가 받아들여진 것이다. 이번 판결은 향후 예술인은 물론 사회단체 등에 대한 정부 지원 문제에 대한 일종의 기준을 제시한 것으로도 평가된다. 재판부는 “정치권력의 기호에 따라 지원을 배제하는 것은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배제 잣대라는 것도 세월호 시국선언과 야당 정치인 지지 등으로 합리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제 관심은 박 전 대통령의 재판에 쏠리게 됐다. 박 전 대통령은 대기업 뇌물수수 혐의 외에도 블랙리스트 관련 혐의로 기소돼 따로 재판을 받고 있는 상태다. 특검은 블랙리스트의 최종 책임자가 박 전 대통령이라고 못박았다. 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고 헌법을 유린한 사상통제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다. 블랙리스트의 실체를 끝까지 밝혀 책임을 철저히 묻는 것만이 다시는 이런 수치스러운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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