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명예 위해 여성을 제물로
수사 내용 공개되며 분노 확산
파키스탄에서 10대 소녀를 대상으로 한 ‘리벤지(보복) 성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파키스탄의 악습으로 남아 있는 마을 의회가 피해 소녀의 형제가 저지른 성폭행의 대가로 소녀를 가족 앞에서 성폭행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드러나 전세계를 충격에 빠뜨리고 있다.
26일(현지시간) 파키스탄 영자매체 돈, 영국 BBC방송 등은 파키스탄 중부 펀자브주 라자람 지역에서 최근 10대 소녀를 대상으로 한 연쇄 성폭행이 자행돼 경찰이 관련 용의자 검거 작전을 진행 중이라고 보도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16일 12세 A양이 라자 람 인근 가족 소유 농지에서 일하던 도중 신원 미상의 남성들에 납치돼 강간 당했고, 이틀 후 이웃에 사는 16세 B양이 새벽 2시쯤 3명의 남성에게 끌려가 유사한 피해를 입었다. B양은 이날 지르가 또는 판차야트라고 불리는 비공식 원로 마을의회의 구성원 40여명과 본인 가족이 보는 가운데 공개적으로 성폭행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소녀의 어머니들이 이후 경찰에 피해를 호소함에 따라 사건의 전말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B양은 A양의 가해자로 추정되는 남성의 여동생이었고, 첫 사건을 알게 된 마을의회가 이에 대한 처벌로 다시 A양의 형제에게 B양을 성폭행하라 지시한 것. 20일 라자람에서 약 55㎞ 떨어진 물탄 경찰에 이를 신고한 B양의 모친은 “제발 딸을 놔달라 애원했지만 (그들은) 누구 하나라도 나서면 죽이겠다고 협박했다”며 울분을 토했다.
이처럼 비극적인 범죄를 모의한 마을의회는 인도, 파키스탄 등지에서 과거 주민 간 분쟁 해결을 맡았던 비공식 회의기구다. 사법부 등장과 함께 불법화 됐으나 일부 소도시에는 여전히 남아 있다. 특히 여성 탄압이 심각한 이들 국가에서 비공식 회의기구들이 개입된 ‘명예 살인’ 등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수사를 담당한 말리크 라시드는 “공식적인 마을의회도 아닌 A양의 친인척이 다수 포함된 형태였다”라며 “가족의 명예를 지킨다는 이유로 여성들을 제물로 삼고 있다”고 알자지라방송에 밝혔다.
이번 사건은 또한 “파키스탄 최악의 성폭행 사건“으로 불리는 15년 전 유사 사건과 함께 언급되며 여론의 분노를 키우고 있다. 2002년 펀자브주 자토이 지역에서 남동생이 거짓 추문에 휩싸이면서 ‘보복 성폭행’ 처벌을 받은 무크타르 마이(당시 28세)는 당시로선 이례적으로 법정 공방까지 감행했으나 용의자가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현재 미국 등을 오가며 여성인권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마이는 “이번 사건은 나에게 일어난 일을 그대로 떠올리게 한다”며 “사법체계가 완비되지 않는 한 여성들의 피해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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