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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세상을 그리다] 한여름에 봄 그림책을 펼쳐드는 까닭

입력
2017.07.27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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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에 때 아닌 봄 책을 꺼내든 까닭은 무언가? 청산해야 할 겨울의 잔재가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봄이라 자처하는 이들 속에 권력에 취해 거들먹거리는 겨울들이 있다. 우주나무 제공
한여름에 때 아닌 봄 책을 꺼내든 까닭은 무언가? 청산해야 할 겨울의 잔재가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봄이라 자처하는 이들 속에 권력에 취해 거들먹거리는 겨울들이 있다. 우주나무 제공

봄이다

정하섭 글ㆍ윤봉선 그림

우주나무 발행ㆍ40쪽ㆍ1만3,000원

제목이 말하듯 이 그림책은 ‘봄 책’이다. 한여름에 때 아닌 봄 책을 꺼내든 까닭은 무언가? 청산해야 할 겨울의 잔재가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겨울을 나는 생명들은 어서 봄이 되고 싶다. 민들레, 개구리, 반달곰, 네발나비, 진달래, 그리고 어린아이 연이. 작고 약하고 대단치 않거나 위기에 몰린 존재들이다. 그래서 이들은 봄이 더 그립다.

민들레는 어디든 더불어 피어나고 싶다. 들이든 산이든 도시 골목이든, 피어나 노란빛으로 물들이고 싶다. 개구리는 자유로이 뛰고 헤엄치며 맘껏 돌아다니고 싶다. 반달곰은 갓 돋아난 새싹 냄새를 배불리 맡고 싶고, 네발나비는 꽃내음 속을 날아 봄소식 전하고 싶으며, 진달래는 누구든 두 눈 환해지도록 속에 접어둔 고운 빛을 펼쳐 보여 주고 싶다. 연이는 어떤가. 온몸에 볕이 스며 마음 반짝일 날을 깨금발로 동동 기다리다 못해 스스로 봄이 되고 싶다. 그래서 이들은 차가운 겨울 땅을 박차고 나선다. 용기 내어 꽃을 피우고, 폴짝 뛰어오르고, 기지개를 켜며 굴 밖으로 성큼 나선다. 발갛게 꽃망울을 부풀리고, 서늘한 바람에 덜 풀린 몸을 실어 날아오른다. 무거운 겨울옷을 가뿐한 봄옷으로 갈아입고 집밖으로 나선다. 아, 바야흐로 봄인 듯하다.

그런데 이상하다. 봄인 줄 알았으나 아직 봄이 아니다. 쌩쌩 바람은 차고 볕은 아직 미약하다. 다들 몸을 움츠린다. “봄이 되려면 더 기다려야 하나 봐.” 하지만, 언제를 봄이라 하는가. 흐르는 세월에 금을 긋고 여기까지 겨울이요 저기부터 봄이라 할 수 있는가. 설령 그렇대도 스스로 피한의 골방에 처박힌 채 떨쳐 나오지 않으면, 세월이 금을 지난들 봄이라 할 수 있는가. 연이는 그것을 안다. “아니야! 개구리가 나오고 곰이 깨어나고 꽃이 피고 나비가 날면 봄이잖아.” 그러자 반달곰이 말한다. “맞아, 내가 봄이야.” 나비와 개구리도 말한다. “나도 봄이야.” 다 같이 외친다. “그래, 우리가 봄이다!” 이들뿐이랴, 새싹들이 발딱발딱 고개를 든다. 나뭇잎이 힘껏 손을 내민다. 꽃들이 펑펑 망울을 터뜨린다. 새들은 노래하고 토끼며 다람쥐, 고라니도 소리 지르고 아이들은 팔 벌려 들판을 달린다. 그랬더니, 마침내 연둣빛 들판이 열린다. 비로소 누구도 되돌릴 수 없는, 완전한 봄이다.

10년 한파를 견디다 못한 생명들이 차가운 광장으로 촛불을 들고 나와 겨울을 몰아냈다. 그런데 이상하다. 겨울 가면 당연히 봄인 줄 알았는데, 그늘의 추한 잔설들이 여전히 한기를 내뿜는다. 일꾼 가리자는데 종북을 들이대고, 유신의 우상을 세우겠노라 악을 쓴다. 물난리에 외유를 꾸짖는 국민들을 들쥐라 모욕한다. 그뿐인가. 봄이라 자처하는 이들 속에도 권력에 취해 거들먹거리는 겨울들이 있다.

다시, 언제부터를 봄이라 해야 하는가. 그림책이 일러준다. ‘골방으로 되들어가면 안 돼! 나와서 외쳐야 해, 우리가 봄이라고. 발딱발딱 고개를 들고 힘껏 손을 내밀고 펑펑 망울을 터뜨려야 해. 노래하고 소리치고 팔 벌려 달려야 해!’ 그래, 봄은 오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삽 들어 잔설을 걷어내고, 그늘마다 봄볕을 끌어들여야 한다. 구석구석 꽃을 심고 겨울이 다시는 기웃거리지 못하도록 수시로 살펴야 한다. 우리 안의 겨울 또한 발본해야만 한다. 그래야 마침내 봄이다. 염천에 봄 책을 다시 꺼내든 까닭이다.

김장성 그림책 작가ㆍ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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