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 격차해소. 어렵지만 절실한 이 시대의 핵심과제다. 하청업체, 협력업체, 중소기업의 비정규직들, 그리고 외관상은 고용의 모습을 피하고 있지만 실상은 고용에 다름 아닌 일자리에 종사하는 특수고용직들의 임금과 근로조건은 대기업이나 공공부문의 정규직에 비해 상당히 뒤쳐진다.
단순히 노동소득의 액수가 얼마냐라는 것만으로도 차이가 나지만, 노동시간의 길이, 고용불안정의 압박, 재량의 정도, 재산형성의 가능성 및 휴일휴가 향유의 가능성 등 총체적인 ‘노동의 사회적 시민권’을 놓고 보았을 때, 격차의 의미는 더욱 심각하게 해석될 수 있다. 마치 구조화된 신분질서가 형성되어 있는 듯하다.
일단 정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임기가 시작되자마자 새 정부는 뚫린 바닥을 메우고 내려간 바닥을 끌어 올리는 과업에 매진해 가고 있다. 대표적인 시도가 공공부문에 그간 늘어만 갔던 비정규직을 대거 정규직화하려는 시도다. 얼마 전까지 방만경영을 힐난하며 복지를 줄이고 비용을 절감하라고 윽박질렀던 게 우리네 국가였음을 생각하면, 가히 상전벽해 같은 상황이다.
시동은 민간부문에도 걸렸다. 최저임금 1만원 시대를 향한 큰 걸음이 꽤 성공적으로 내디뎌졌다. 2000년대 들어 가장 높은 인상폭으로 시급 7,500원대에 진입하게 된 것이다. 정부 단독으로 한 일은 아니었지만, 정부의 시그널이 주요하게 작용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격차해소는 바닥만 올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천장을 낮추는 접근도 필요하다. 정부가 부자에 대한 과세를 늘리려는 행보를 시작한 것도 – 이런저런 우려가 없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 크게 보아 격차해소와 포용적 성장을 도모하려는 정책 패키지의 일관된 요소로 읽혀진다. 과연 증세가 얼마나 정의롭게 설계되고 그만한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이지만,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이끌어 가는 새 인물들의 면모를 보면, 과거와는 좀 다를 것으로 기대되는 것이 사실이다. 일단은 지지해 보련다.
또 하나 고민스러운 게 있다. 바로 노조효과와 고용형태 등 우리 사회의 노동시장제도가 결과적으로 초래하는 불평등에 대한 해법 마련이다. 노동조합의 혜택을 받는 정규직 일자리에 종사하는 노조원들이 열심히 일해서 자신들의 기업이 올린 성과를 놓고 사측과 교섭을 벌여 임금인상을 거두는 일은 당장은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하등 문제될 것이 없다. 허나 그것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노동운동의 근간을 갉아 먹고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쪽으로 작동한다면, 무언가 수정되거나 덧붙여져야 하지 않을까.
어느 사회나 먹고 살 만한 누군가가 가져가는 몫은 또 다른 이가 가져갈 수 있었는데 그렇지 않게 된 몫을 포함하고 있는 법이다. 누군가의 책 제목에도 있듯이 “우리 월급의 정의로움”에 대해 성찰하는 일은 그래도 먹고 살기 조금 나은 사람들이라면, 특히 사회정의에 민감한 노조원들이라면, 더욱 더 그래야 할 것이다.
조세정책이나 복지정책 등 정부의 정책수단 못지 않게 필요한 것이 노동조합의 실천적 노력이다. 노동운동에 있어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삶의 질을 올리는 일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그것이 분파적이고 특권적인 결과로 귀결되지 않고 혜택이 고루 퍼지도록 하는 일이다. 연대적 실천과 그를 통해 궁극에 사회전반에 평등의 가치를 실현하는 일은 노조로서는 조직기반의 확대와 운동의 사회적 영향력 증진을 위해 우호적인 조건을 마련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격차해소를 향해 막 시동을 걸고 포용의 시대를 열어가겠다는 이 정부의 진정성이 의심되지 않는다면, 노동조합은 이러한 흐름에 적극 편승해야 할 뿐 아니라, 그것이 후퇴하지 않도록 더욱 더 강하고 선도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다. 이야말로 노조 스스로 묵은 때를 벗고 자기혁신을 이룰 기회로 삼을 만하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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