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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판사, 당신들의 존재 이유

입력
2017.07.26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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곪을 대로 곪은 양승태체제 관료화

민낯 드러낸 ‘판사 블랙리스트’ 논란

국민적 지지 얻어야 개혁 요구 결실

’판사 블랙리스트’ 논란을 계기로 지난달 19일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 6년간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고 국민을 섬기는 사법부로 거듭날 수 있을까. 류효진기자
’판사 블랙리스트’ 논란을 계기로 지난달 19일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 6년간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고 국민을 섬기는 사법부로 거듭날 수 있을까. 류효진기자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는 말이 있다. 언론계에선 “기자는 기사로 말한다”로 변주되기도 했다. 갈등 사안에 대한 종국적 판단으로서 판결이 갖는 무게를 일깨우는 말이겠다. 그러나 출처가 분명치 않은 이 법언(法諺)은 오남용의 위험도 안고 있다. 판결에 토 달지 말라는 오만함이나 말해야 할 때 해야 할 말을 삼키게 하는 입막음 효과 같은 것 말이다.

판사가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로만 말할 수 있으려면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 그리고 사법부 내의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 불행하게도 우리 사법부는 그렇지 못했다. 독재정권 이래 판사들이 사법권의 독립 보장과 개혁을 요구하며 연판장을 돌리고 법복을 벗는 ‘사법파동’이 네 차례 이어졌다. “매번 화려한 말잔치와 함께 시작되어 결국은 실질적인 개혁의 성과도 없이 용두사미로 끝났다”는 박한 평가(양삼승ㆍ ‘권력, 정의, 판사’)도 있지만, 그것마저 없었다면 사법부의 모습은 지금보다 훨씬 더 볼품없었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

민주화 이후 정권교체기마다 이어진 2~4차 파동의 타깃은 사법부의 보수화, 관료화였다. 이 과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개혁을 시도했으나 불가역적 변화를 끌어내는 데는 실패한 이용훈 전 대법원장 이후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 6년 간 사법부는 ‘보수의 철옹성’으로 돌아갔다. ‘서오남’(서울대 출신 50대 남성 판사) 중심의 대법관 인선이 되풀이됐고, 논쟁이 사라진 자리에 ’13 대 0 전원일치’ 판결이 똬리를 틀며 하급심의 도전은 위축됐고, 비대화한 법원행정처는 출세 코스로 자리잡았다. 사법부의 신뢰는 뿌리째 흔들렸다.

관료사법의 민낯을 보여준 일화 하나. 3년 전 대법원이 한창 공들이던 상고법원 설치법안 관련 논설위원 간담회에 참석했다. 찬반이 첨예하게 갈린 사안에 대해 제대로 공부할 기회라는 기대는 뻔한 인사말에 이어 술잔이 돌며 무너졌다. 법원행정처 엘리트 법관들이 불콰한 낯빛으로 테이블을 오가며 분주히 술잔을 부딪쳐 오는 모습은 낯설고 불편했다.

이들이 법안 통과의 키를 쥔 국회의원 로비에도 동원됐다는 후문이 들려왔다. 고교생 대상 TV 퀴즈프로그램에 난데없이 상고법원 문제가 출제되고, 상고법원 설치를 기원하는 자전거 대회가 열렸다. 전국 법원에 내건 플래카드 문구처럼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사법서비스’가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지 차분하고 성의 있게 설명하고 설득하려는 노력은 전무했다. 더 놀라운 건 2016년 19대 국회 임기 만료로 관련 법안이 폐기된 뒤 사법부의 신뢰와 맞바꾼 이 어설픈 여론몰이에 대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최근 ‘판사 블랙리스트’ 논란으로 곪을 대로 곪은 관료사법의 민낯이 다시 드러났다. 진상조사위원회조차 물증 조사를 어물쩍 건너뜀으로써 합리적 의심만 키웠다. 어렵사리 성사된 전국법관대표회의의 재조사 요구에는 색깔론에 기댄 보수언론의 공격이 가해졌고, 양 대법원장은 보란 듯이 거부권을 행사했다. 재조사 재촉구가 나왔지만 이미 동력을 상실한 듯 보인다. 논란 초기 사퇴 요구에 시달렸던 양 대법원장은 무사히(?) 임기를 마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임기를 채운다 해도 그다지 명예롭지 못한 퇴진이 될 것이다.

남은 과제는 사법부를 끌어갈 판사들의 몫이다. 판사들의 개혁 요구는 왜 5차 사법파동이 되지 못했을까. 연판장이나 줄사표가 없어서가 아니다. 검찰개혁에 쏠린 만큼의 국민적 관심을 모으는 데 실패한 탓이다. “저는… 좋은 재판을 하고 싶었습니다.” 4차 사법파동 당시 사표를 던진 박시환 판사가 눈물을 쏟으며 했던 말처럼, 판사들의 저항이 사법부의 신뢰를 회복하고 좋은 재판을 하기 위한 것임을 설득해내지 못한 것이다.

요즘 즐겨보는 드라마 ‘비밀의 숲’의 한 장면. 검찰총장이 권력과 재벌이 결탁한 비리 수사를 막으며 “내겐 검찰의 존재를 지켜야 할 책임이 있다”고 하자, 한 부장검사는 “우리의 존재가 아니라 존재 이유를 지켜달라”고 말한다. 판사들이 오랜 침묵을 깬 것은 자신들의 존재를 지키기 위함이 아니라 사법부 존재의 이유가 조롱 당한 경위를 물음으로써 존재의 이유를 드러내려는 몸부림이라고 믿고 싶다. 바라건대, ‘무엇으로부터의 독립’만이 아니라 ‘무엇을 위한 독립’인지를 더 깊게 성찰해야 한다.

이희정 미디어전략실장 ja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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