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사범에 대한 초법적 처형으로 인권침해 논란의 중심에 있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국가인권위원회 폐지’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인권에 대한 두테르테 대통령의 인식 부족은 물론, 그의 반인권 행보가 갈 데까지 갔다는 뜻이다.
26일 현지 언론에 따르면 두테르테 대통령은 최근 국정연설을 통해 자신의 승인 없이 군인과 경찰관들이 인권위 조사를 받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며 인권위 폐지를 경고했다. 인권위가 두테르테 대통령의 ‘마약과의 유혈전쟁’은 물론 계엄령 선포와 관련, 인권 침해에 대해 조사에 나서자 나온 발언이다.
필리핀 인권위는 두테르테 대통령의 계엄령 발동과 군경의 영장 없는 체포ㆍ구금 허용 이후 민다나오 섬에서 인권 침해 사례가 있는지 감시하고 있다. 또 마약 유혈 소탕전과 관련, 마약용의자 초법적 처형 피해자로 의심되는 646명의 사망 사건도 조사하고 있다.
헌법상의 기구인 인권위의 이런 활동에 대해 두테르테 대통령이 폐지 가능성까지 거론하자 필리핀에서 인권 실종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재키 데 기아 인권위 대변인은 “두테르테 대통령의 발언은 인권위 활동에 대한 인식 부족을 보여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인권위는 민주적이고 독립적인 헌법상의 기구”라며 “정부 당국의 권한 남용이 없도록 감시자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두테르테 대통령은 지난 5월 23일 계엄령을 선포한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섬에서 군경이 성실하게 임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인권을 침해한 적이 없다며 인권위 활동에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특히 두테르테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자신의 범죄 소탕 방식을 비판하는 치토 가스콘 인권위원장을 무시하겠다고 밝히면서 인권위와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가스콘 인권위원장은 “국민에게 인권의 중요성을 알리고 인권 침해를 조사하는 임무를 계속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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