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1,000냥이면 눈이 900냥”이라는 옛말이 있다. 반려동물이 앞을 보지 못하게 되면, 동물뿐 아니라 보호자의 삶의 질도 급격하게 떨어질 수 있다.
생각보다 많은 반려동물이 여러 가지 원인으로 시력을 잃고 병원에 온다. 앞이 안 보이기 시작하면 점점 예민해져서 문제 행동을 하게 되고 불안감에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 모든 것을 보호자에게 의존하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가족들의 피로도도 증가하고 반려동물과의 행복한 동거생활에 금이 가게 된다.
반려동물이 시력을 잃는 원인은 외상과 사고, 각막염ㆍ포도막염 등 안구 내 질환의 진행, 백내장ㆍ녹내장ㆍ고혈압에 의한 망막 손상, 선천성 진행성 망막 위축 등으로 다양하다.
시추처럼 눈이 큰 아이들은 외상으로 내원하는 경우가 많다. 교상(벌레나 다른 동물에게 물려서 나는 상처)은 물론, 심지어 강제로 잡는 상황에서도 안구가 탈출되기도 한다. 그 밖에도 만성 각막 질환으로 각막에 침착된 색소가 빛의 통과를 방해해서 앞을 못 보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원인으로 각막이 손상되고, 적절히 치료하지 않으면 각막 궤양 및 천공으로 시력을 잃을 수 있다.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는 경우도 많다. 우리 병원에 백내장으로 가장 많이 내원하는 품종은 코커스패니얼이다. 보통 선천성ㆍ노령성ㆍ당뇨성 백내장을 앓는데, 선천성ㆍ노령성 백내장은 아주 서서히 진행되지만 당뇨성 백내장은 몇일새 빠르게 악화되기도 한다. 당뇨병을 앓고 있는 아이의 눈이 갑자기 하얗게 보인다면 당뇨성 백내장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는 경우엔 수술로 교정해서 시력을 회복할 수 있다.
녹내장으로 인해 실명하는 경우도 많다. 녹내장은 안구 내 모양체에서 생성된 안방수(안구 내 압력을 유지하는 액체)의 배출 이상으로 안압이 상승하는 질환이다. 안압이 50mmHg 이상(정상은 10~24 mmHg) 계속 유지되는 경우 1~2일 내에 실명할 수 있는 응급 질환이다.
녹내장은 눈이 커 보이고 상부 공막(안구 위쪽의 흰자위)에 심한 충혈이 발생하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면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증상을 보이면 바로 내원해서 응급처치를 받고 시력 상실을 막아야 한다. 녹내장은 통증이 매우 심하기 때문에 경련까지 하는 경우도 있어 조기 발견과 응급처치가 중요하다. 시기를 놓쳐 시력을 잃은 경우에도 정상 안압을 유지하도록 처치해 안압 상승으로 인한 고통을 막아줘야 한다.
푸들은 선천성 진행성 망막 위축증을 앓을 수 있다. 망막은 각막과 수정체를 통해 들어온 빛 신호를 뇌로 전달하는 등 시력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분이다. 진행성 망막 위축증은 망막이 점점 위축되어서 빛을 뇌로 전달하는 기능이 떨어지는 질환이다. 조그만 어두워져도 시각이 제 기능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두운 환경에서 잘못 보는 것 같다면 안과검사를 받아야 한다.
앞이 보이지 않아 거의 움직임이 없었거나, 눈이 아파서 고통스러워하던 아이들이 다시 시력을 회복해 병원 대기실을 신나게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면 가슴 깊은 곳에서 감동이 밀려온다.
신체 내부의 질환과 달리, 반려동물의 눈과 관련된 질병은 보호자의 관심과 적절한 조기 치료로 실명을 예방할 수 있다. 정기 안과 검진으로 문제를 빨리 발견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이다. 오늘 우리 아이의 눈은 건강한 지 눈맞춤을 한 번 해보자.
문재봉 수의사ㆍ이리온 동물병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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