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권 시절 국가정보원이 노골적으로 선거와 국내 정치에 개입했음을 보여주는 녹취록이 공개됐다. 검찰이 24일 서울고법의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파기환송심 재판에 제출한 녹취록에는 총선과 지방선거 개입, 언론공작, 여론조작, 노조개입, 보수단체 지원 등 국정원의 전방위적 불법ㆍ탈법 행태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권력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국가 정보기관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났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원 전 원장이 2009년부터 2012년 사이에 주재한 ‘국정원 전 부서장 회의’발언을 담은 녹취록을 보면 2012년 대선 댓글 사건이 일과성이 아님을 알 수 있다. 2011년 11월18일 회의에서 원 전 원장은 “내년에 큰 선거가 두 개나 있다. 교육감 선거도 분열 때문에 졌는데 지부장들은 12월 시작되는 (총선)예비등록 때 현장에서 교통정리가 잘 되도록 챙기라”고 당부했다.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선 “우리 지부에서 후보를 잘 검증해야 한다”고 했다. 사실상 국정원 조직이 정당 공천에 개입하라는 지시나 다름 없다. 그는 지시 말미에 “꼬리를 안 잡히도록 하는 게 정보기관”이라고 강조해 불법임을 스스로 인정했다.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 보도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여론형성에 개입하라고 주문한 내용도 드러났다. “일이 벌어진 다음에 대처하지 말고 (칼럼 등을) 미리 준비해 놓았다가 바로 아침 신문에 실리도록 해야 한다”거나 “기사 잘못 쓴 보도 매체를 없애버리는 공작을 하는 게 여러분이 할 일”이라고까지 했다. 민주주의의 기반인 언론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다는 발상이 놀랍기만 하다.
앞서 국정원이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온ㆍ오프라인 역량을 총동원해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장악해야 한다는 취지의 문건을 작성해 청와대에 보고한 사실이 밝혀졌다. 그 문건에는 국정원이 야당 인사들을 사찰한 내용도 담겨있었다. 국정원의 정치공작이 청와대의 묵인이나 지시에 따라 이뤄졌다고 볼 수밖에 없는 정황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국정원은 ‘적폐청산 태스크 포스’를 만들어 그 동안 자행된 국정원의 불법 행위를 조사하겠다고 밝혔지만 그것만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검찰 수사를 통해 국정원의 정치공작 행태를 낱낱이 파헤쳐야 한다. 당시 청와대가 어디까지 관여했는지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성역 없이 조사해야 한다. 훼손된 민주주의와 헌법의 기본 가치를 바로 세우려면 권력과 정보기관의 정치공작, 언론공작을 단죄하지 않고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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