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작별’에 등장하면서 동물원 동물들의 비극적인 삶을 알린 시베리아호랑이 ‘크레인’이 25일 1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2000년 10월 15일 경기 과천 서울대공원 맹수사에서 태어난 크레인은 새끼 때 동물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동물원을 홍보하는 ‘반짝스타’로 활용됐다. 황윤 다큐멘터리 감독은 넉달 간 함께하면서 태어나자 마자 목줄을 한 채 훈련이 끝나면 전시장 뒤 어두운 콘크리트 방에 갇혔고, 아무것도 없는 방에서 하루 종일 목이 쉬도록 운 크레인을 영상에 담았다. 황 감독은 크레인이 병약하고 겁이 많았지만 브라운관에서는 용감한 새끼호랑이로 탈바꿈된 반면 야생을 박탈당하는 훈련을 받고 슬프게 우는 모습은 단 1초도 방송되지 않았다고 회고한 바 있다.
이후 크레인은 몸집이 커지고 근친교배로 태어나 선천적인 백내장과 안면기형으로 인해 전시동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2004년 치악산 드림랜드로 옮겨졌다. 하지만 드림랜드가 경영난을 겪으면서 동물들은 무더위에 마실 물도 공급받지 못했고, 동물보호단체와 언론이 동물원을 방문하면서 크레인을 비롯한 동물원 동물들의 열악한 실태가 공개됐다.
외로운 호랑이 크레인을 위한 서명운동이 시작됐고, 크레인은 그 해 12월 28일 서울대공원으로 다시 돌아와 건강관리를 받아왔다.
서울대공원은 “비록 장애를 갖고 있었지만 건강하게 생활해오던 중 지난 22일 기력이 급격히 저하됐고 25일 오전 폐사했다”며 “시베리아 호랑이의 평균수명이 약 15년임을 감안하면 건강하게 살다가 노령으로 자연사 했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황 감독은 “크레인은 인간의 눈요기를 위해 고통받는 동물들을 대변하는 존재였다”며 “한번도 철창 밖으로 나가보지도 못한 게 안쓰럽다. 한번 만나러 가야지 하면서 다음으로 미루곤 했는데 결국 보지 못했다”며 크레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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