쑨정차이 낙마로 역할론 급부상
베이징 정가 “習 독주에 일등공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독주체제를 굳히면서 그의 최측근인 왕치산(王岐山)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최근 부패 의혹으로 휘청이는 듯하더니 차기 유력주자였던 쑨정차이(孫政才) 전 충칭(重慶)시 서기의 낙마를 전후해 존재감을 회복하는 모습이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24일(현지시간) ‘중국의 권력 집행자’라는 장문의 기사를 통해 왕 서기를 집중 조명했다.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의 총애를 받는 금융전문가였던 그가 1997년부터 수차례 금융ㆍ외환위기를 극복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사실, 문화대혁명 시기 하방 중에 시 주석과 끈끈한 우정을 나눴고 현 체제에선 반부패 드라이브의 선봉에 선 사실 등을 열거하며 은연중에 시진핑 2기 체제에선 ‘왕치산 역할론’이 경제 분야로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 왕 서기는 2012년 제18차 공산당대회에서 시 주석이 권력을 거머쥔 이후 사실상의 2인자로 여겨져 왔다. 최고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 7명 중 서열은 6위였지만 반부패ㆍ사정 작업을 총괄하며 시 주석의 권력 기반을 공고히 한 덕분이다. 올해 69세이지만 중국 지도부의 7상8하(七上八下ㆍ67세는 유임하고 68세는 은퇴한다) 묵계를 깨고 상무위원 임기를 5년 연장하는 것은 물론 권력서열 2위인 리커창(李克强) 총리를 대신해 경제 분야를 총괄할 것이란 얘기가 진작부터 나왔을 정도다.
최근 들어 왕 서기가 새삼 주목받는 이유는 한동안 부침을 겪는 듯하던 그가 후춘화(胡春華) 광둥(廣東)성 서기와 함께 ‘포스트 시진핑ㆍ리커창’으로 불리던 쑨 전 서기의 낙마를 주도한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시 주석이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을 견제하기 위해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과 연대해온 상황에서 후 전 주석이 천거한 쑨 전 서기를 비리 혐의로 솎아내려면 시 주석의 절대적인 신임이 필수다. 게다가 시기적으로는 19차 당대회를 앞두고 전ㆍ현직 지도부가 권력구도를 논의하는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 직전이다. 시 주석이 왕 서기의 사정칼날을 빌어 다른 정파를 향해 공개 경고를 한 것이다.
중국 정부와 관영매체가 총동원돼 미국 도피중 왕 서기 일가의 재산 해외은닉 의혹을 제기한 궈원구이(郭文貴)를 비난하며 ‘왕치산 구하기’에 나선 직후 쑨 전 서기 낙마 파문이 불거진 점도 의미심장하다. 흔들리는 듯하던 왕 서기의 입지가 굳어졌고 곧바로 시 주석 1인 지배체제를 가속화하는 결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베이징(北京)의 한 정가 소식통은 “시진핑 독주체제의 일등공신이 왕 서기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그에 대한 시 주석의 신임도 여전해 보인다”면서 “현재대로라면 왕 서기의 상무위원 연임은 물론 리 총리를 대신해 경제분야를 총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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